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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기사

아바타 학교

어린이과학동아 2005.12.01 23호

그때 너는 뭘 보고 있었던 걸까? 교실 맨 뒷자리의 장식 없는 나무 의자에 앉아 너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어. 나는 그러는 너를 바라보고 있었지. 내가 너무 너를 빤히 쳐다봤던 걸까? 어느덧 네가 내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린 걸 보면 말이야. 옆에 서 있던 나를 올려다보던 네 눈동자는 만화영화 주인공의 눈동자처럼 새까맣고 또렷해서 나를 흠칫 놀라게 했어.
그래도 시선을 피하게 되진 않았어.
“안녕?”
네가 말했어.
“난 다영이야. 오늘 전학 왔어.”
또 네가 또박또박 말했어.
‘알고 있어.’
나는 속으로 생각했어. 어제 담임선생님이 새로 전학생이 온다고 말씀해 주셨거든. 게다가네가 창밖을 보고 있을 때, 보조 모니터를 이용해 네 정보를 찾아봤는걸. 난 컴퓨터 사용에 능숙한 편이라구.



“만나서 반가워.”
네 정보를 찾아보느라 머뭇거리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나에게 네가 다시 말했어.
그러면서 너는 슬며시 오른손을 내밀었어.

‘악수를 하자는 건가?’
나는 조금 혼란스러웠어. 그래서“은은아, 내 머리 어때?”라고 말하며 너와 나 사이에 끼어든 나리가 조금 반갑기까지 했지. 널 따라서 어정쩡하게 들어올리던 손을 도로 내려놓을수 있었으니까.
나리는 또 머리 모양을 바꾸고 왔더랬지. 창가에 선 나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자 햇빛을 받은 머리카락이 금빛으로 반짝였어. 지난번에 달고 온‘반짝이는 속눈썹’과 같은 회사 제품이었나봐. 나리는 항상 그런 식이야. 다른 아이들이 뭘 하든 상관없이 늘 자기 자랑만 늘어놓지. 얼마나 유치한지 몰라. 어차피 저 머리카락도 속눈썹도 모두 진짜 자기 것은 아닌데 말이야.
보조 모니터에 나리의 비밀쪽지가 표시됐어.
쟤랑 무슨 얘기하는 거야? 외곽구역에서 전학 왔나봐. 너무 촌스러워.
나리가 네 험담을 하는 줄도 모르고 너는 또 또박또박 말했지.
“넌 나리지? 난 다영이야. 넌 참 예쁘구나. 머리 모양이 잘 어울려.”
그 말을 들은 나리의 얼굴은 햇살 받은 머리카락보다도 더 반짝였어. 나리가 노란 치마를나비처럼 팔랑거리며 다른 친구들에게로 가는 동안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셨어. 그래서 모두들 제자리에 앉아야만 했지. 나도 얼른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어. 문득 돌아보니, 너는 다시 창문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어. 창문 밖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선명하게 떠 있었어. 광고에 나오는 풍경 같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창밖의 구름은 광고에 쓰이는 합성 영상이 아니었어. 진짜 구름이었어.
내가 좋아하는 역사 수업 시간이었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았어. 악수를 청하던 너의 손이떠올랐어. 악수는 영화에서 어른들끼리 하는 건 줄로만 알았어. 난 한번도 악수를 해 본 적이 없었거든. 게다가 아바타끼리 악수라니! 어떤 느낌일까? 느낌이 있긴 있을까?
선생님이, 정확하게는 선생님 아바타가 20세기 어린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셨어. 나는‘수업 저장’버튼을 누르고 내 아바타에게‘역사-끄덕’동작을 명령했어.‘역사-끄덕’은 내가 만들어 낸 아바타 명령이야. 역사 선생님은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시면 끝도 없이 혼자서만 말씀하실 때가 있거든. 그럴 때 아이들은 아바타가 수업을 듣고 있는 것처럼 교실 의자에 앉혀둔 채 저마다 다른 짓을 하곤 해. 그렇지만 아바타를 분리시킨 채 너무 오래 내버려 두면 선생님도 금방 눈치를 채시거든. 그래서 내 아바타가 적당한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반응을 하도록‘역사-끄덕’이란 특별 명령을 만들어 놓은 거야. 아까도 말했나? 난 컴퓨터를 잘 다루는 편이거든.
그렇게 아바타를 교실에 둔 채, 난 잠시 아바타 시청각장치를 벗고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어. 참 이상하지, 학교 시간 외에도 얼마든지 자유 시간이 있지만, 수업 시간에 몰래 다른 걸 하는 게 더 재밌더라구.
문득 네가 어떤 학교에 다니다 전학을 온 것일지 궁금했어. 우리가 다니는 아바타 학교도겉모습은 일반 학교와 비슷하긴 하지. 심지어 아빠가 어렸을 때 다니던 학교에서도 교실마다 선생님 한두 분과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이 모여서 함께 공부를 했대. 엄마는“예전에 비하면 요즘 학교는 많이 좋아졌다”고 하셔. 하지만 매일 똑같은 교실에 몇 시간씩 갇혀 있어야 하는 건 정말 지겨워. 그래도‘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어른이 될 때까지 학교에 꼭 다녀야 한대.
아바타 학교엔‘직접’출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제일 좋아. 아바타가 내 대신 학교에가는 셈이니까.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방 컴퓨터를 통해서 교실의 컴퓨터로 접속하여‘홀로바타’를 실행시키면 내 아바타가‘뿅’하고 내 자리로 나타나잖아. 처음에 난 그게 너무 신기했어. 엄마랑 아빠도 매일 회사로‘직접’출근하시진 않아. 평상시엔 아바타가 회사로 출근을 하거든. 아바타가 없을 때도 주로 집에서 컴퓨터로 일을 하셨지만, 아바타를 통해 회사 일을 하면서 회사 분들과 더 친해질 수 있으셨대.
이 모두가 홀로그램 아바타가 보급된 덕분이라는 건 너도 잘 알지? 엄마가 홀로그램 개발에 관련된 일을 하셔서 난 제법 많은 걸 알고 있어. 3차원 홀로그램이 실용화된 건 꽤 오래된 일이지만 지금처럼 아바타로 응용되기 시작한 건 내가 태어날 무렵이었대. 지금은 홀로바타 영사기가 딸린 컴퓨터 네트워크가 깔려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아바타를 보낼 수 있지만 말야.‘아바타 실명제’가 시행되면서 한 사람에게 하나의 홀로그램 아바타만 허용된 것도 몇년 되지 않았다고 해. 그 이전에는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아바타를 가질 수도 있었나봐.
내 아바타가 여러 개라면 재밌을까? 난 좀 정신없을 것 같아. 아바타는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진짜 내가 항상 컴퓨터 앞에서 동작을 지시해야 하잖아. 유치원에 다닐 때만 해도 홀로 그램 아바타의 모습과 동작만 보여 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시청각장치를 이용해서 아바타가 보는 광경을 볼 수도 있고 내 아바타가 말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게 할 수도 있지. 요즘은 아바타 동작기로 간단하게 아바타를 움직일 수 있지만 이렇게 손쉽게 아바타를 이용하기 위해선 굉장히 복잡한 기술이 필요하대. 근사하지?
이런저런 딴 생각을 하느라고 나는 보조 모니터에 쪽지가 왔다는 표시가 된 줄도 모르고있었어. 반장인 진진이가 보낸 거였어.



난 오늘 전학 온 네가 비밀 학급회의가 뭔지 잘 모를까봐 조금 걱정되었어. 아바타 학교 아이들은 가끔 선생님 몰래 밤중에 만나서 회의도 하고 놀기도 해. 물론 아바타들끼리 만나는거지. 난 다시 시청각장비를 머리에 쓰고 교실로 들어갔어. 비밀쪽지라도 보낼까 하고 다영이 네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 그 때 너와 눈이 마주쳤어. 기억나? 네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내게 한쪽 눈을 찡긋하며 살짝 웃었던 것? 참 야릇하게 흐뭇했어. 아바타끼리 서로 눈을 바라보며 웃었던 일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였을까? 너랑 진짜로 친구가 된 기분이었어. 뭔가 마음이 통한 느낌이었다구.
그날 밤 체육관의 일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야. 교실이나 휴게실이 아니라 체육관이모임 장소였다는 점에서 내가 빨리 눈치를 챘어야 하는 건데! 복장규제 얘기를 한다기에 내가 방심했던 거지. 처음에 복장규제 얘기를 잠깐 하긴 했지만.

아바타 실명제가 실시된 이후로는 진짜 내 몸의 정보를 바탕으로 아바타를 만들어야 하지만, 사실 홀로그램 아바타가 원래 인물이랑 완전히 똑같지는 않잖아. 사람들은 그 점을 이용해서 원하는 대로 아바타를 꾸미는 걸 좋아하지. 아마 진짜 자신보다 못생기고 허름한 아바타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너도 알겠지만 아바타 옷이나 인공 머리카락으로 치장하는 것 외에 아바타 성형도 많이들하지. 얼마 전부터 학교에서도 아바타 성형을 하는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했어. 대표적인 아이가 바로 나리야. 나리의 아바타 옷이 진짜 옷보다 비싸다는 건 다들 알지만 나리의 원래 얼굴을 아는 애들은 별로 없을걸? 아바타 학교에서 아이들이 진짜로 만나게 되는 건 일 년에 한두 번뿐이니까. 열 살 이후에 우리 반에서 나리를 실제로 만난 아이는 아마 나뿐일 거야.
나리 엄마가 우리 엄마 친구라서 어렸을 때부터 나리와 잘 알고 지냈거든. 나리의 쌍꺼풀이랑 속눈썹은 물론, 투명한 피부랑 부드러운 턱이랑 살짝 뾰족한 예쁜 코는 모두 아바타 성형의 위대한 결과야.
아바타 성형이 유행하면서 등록된 자료와 홀로그램 아바타의 모습의 차이가 커졌고, 학교에서 학생들의 아바타 성형을 규제할 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물론 아이들 대부분은 사생활 침해라며 반대하는 입장이야. 그래서 비밀 학급회의가 소집된 거였어. 정확하게는‘복장규제’가 아니라‘성형규제’가 문제가 되는 거였지.
나는 네가 다른 학교에서 왔기 때문에 그 부분을 잘 모를까봐 비밀쪽지를 보낸 거였어. 참,너랑 나는 낮에 학교에서의 복장 그대로였는데 나리는 무지갯빛 레이스 잠옷을 입고 있었잖아.
내 눈에 그게 좀 거슬리기도 했나봐. 내가 네게 다음과 같은 쪽지를 연달아 보냈던 걸 보면.
다영아, 아바타 성형이 뭔지 알지?
우리 반에서 아마 나리 아바타가 가장 성형을 많이 했을 거야.
난 어렸을 때부터 나리랑 잘 아는데, 나리 얼굴은 그냥 평범해.
피부도 저렇게 뽀얗지는 않아.
나리 쌍꺼풀이랑 눈동자가 굉장히 예쁘지? 그거 다 비싼 장식품이야.
다영이 네 눈이 더 예뻐.
게다가 레이스 잠옷이라니! 다 진진이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거야.
그리고….

그 순간 네게 가는 비밀쪽지가 거부되었어. 처음엔 시스템이 잘못된 줄 알고 어리둥절했는데, 알고 보니 다영이 네가 의도적으로 내 쪽지를 차단한 거였어. 얼마나 당황했는 줄 아니?
그냥 네게 친절하게 대했던 건데, 넌 나를 친구 험담이나 하는 아이로 여겼겠지. 난 그래도 언제나 나리가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고, 나리만큼이나 너랑 친해지고 싶었던 거야.
그 동안 아이들은 복장규제와 성형규제에 반대한다는 얘기만 몇 마디 나누고 있었을 뿐,
특별히 회의를 하고 있지 않았어. 그러다가 어떤 애가 외쳤어.
“그만 하고 전학생 신고식이나 하자.”
그래, 학급회의는 핑계에 불과한 거였어. 아바타 학교에는 새로 전학 온 아이를 시험하는관례가 있거든. 그걸‘전학생 신고식’이라고 불러. 친구가 되자는 핑계로 괜히 이것저것 해보라고 하면서 구경하는 거야. 처음 아바타 학교에 전학 온 아이들은 아바타 조작에 서툴기때문에 아이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다 보면 놀림거리가 되기 십상이야. 일반 학교에‘아바타 체육시간’이 있을 리 없으니까 서투른 게 당연한데도 그걸 구경거리로 삼거든. 그 사실을 알려 주고 싶었지만 네게 보낸 비밀쪽지는 몽땅 되돌아왔고, 넌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어.
마치 내가 실기시험이라도 보는 것처럼 애가 탔어.
그 이후에 있었던 일은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아. 네가 앞구르기랑 뒤구르기랑 물구나무서기를 제대로 했던 것, 농구공을 들고 멋지게 뛰어올라 덩크슛을 했던 것, 그것도 세 번이나 연이어 성공했던 것, 그게 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가? 네가 우리 반 남자아이들과 팔씨름을 해서 몽땅 이겼던 건 확실히 기억나. 방에서 실제로 악을 쓰면서 네 응원을 했으니까. 아바타 팔씨름은 동작기를 이용해 미세한 힘 조절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 어려운 조작 중 하나야.
그런데 경이롭게도 넌 그 모든 걸 잘 해 냈어! 학교를 통틀어 너 만한 아바타 운동신경을 가진 애는 없을 거야.
다음날 학교에 가자 넌 영웅이 되어 있었어. 다른 반이랑 다른 학년에도 소문이 파다하게났어.“민다영이 누구야?”,“민다영!”,“다영아”.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은 네 주변을 떠날 줄 몰랐지. 나도 너랑 얘기하고 싶었지만 다시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았어.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나? 학교는 너의 멋들어진 신고식에 관한 소문과 체육대회 소식으로 시끌벅적했지만 내겐 우울한 시간이었어.
그리고 체육대회 날이 되었지. 아바타 체육대회가 아닌 진짜 체육대회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아바타 학교의 큰 행사야. 아바타가 아닌 실물들이 모여서 달리기를 비롯한 각종 운동 경기를 하지. 우리 반 아이들은 다영이 너를 농구팀에 끼워서 우승할 꿈에 부풀어 있었어.“아바타 농구를 잘 한다고 진짜 농구도 잘 하는 건 아니잖아”라고 누군가가 말했지만 묵살되었어. 아바타 체육을 잘하는 애들이 진짜 체육도 잘하는 경우가 많았거든. 게다가 다영이 너 정도의 실력이라면 실제로도 꽤 잘할 것으로 예상되니까.
체육대회라고 모든 아이들이 다 모이는 건 아니야. 빠지는 애들이 꼭 있지. 누군가 빠진다면 나는 그게 나리일 거라고 생각했어. 나리는 작년 체육대회에도 오지 않았거든. 이유는 짐작할 수 있잖아? 누군들 아바타보다 못난 진짜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싶겠어? 아바타 성형을 전혀 하지 않은 나도 아이들을 직접 만날 때면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걸.
그런데 내 예상이 빗나갔어. 그 날 나리는 당당하게 학교에 나타났고, 그리고, 너는 오지않았어. 농구팀 아이들이 다영이 너를 애타게 기다렸는데 오지 않아서 실망스러웠나봐. 아이들 사이에서 민다영의 신고식은 누가 대신 해 준 것이 아니냐는 둥, 민다영은 세상에서 제일 못생겼을 거라는 둥,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오고갔어. 농구팀에는 너 대신 진진이가 합류했어. 그리고 아이들은 의외로 나리에게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어. 나리의 쌍꺼풀 없는 눈과 반짝이지 않는 머리카락을 직접 보고도 말이야.
이상하게 화가 났어. 너랑, 다른 아이들에게도 배신감 비슷한 걸 느꼈어. 난 빨리 하루가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져서 무릎을 다쳤어. 피는 조금 났고 눈물은 많이 났어. 아이들이 내가 운다고 놀렸어. 물론 난 아파서 운 게 아니었어.
우리 반은 결국 농구 시합에서 졌어. 하지만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지. 그건 바로 진진이야. 진진이는 의외로 멋진 골을 많이 넣었거든. 나리가 팔짝팔짝 뛰며 기뻐했어. 제법 굵은 팔뚝으로 이마의 흐르는 땀을 훔쳐내던 진진이의 모습이 내 눈에도 꽤 멋져 보이긴 했어. 또 무슨일이 있었는 줄 아니? 체육대회가 끝난 후 진진이가 나리에게 꽃을 주며 좋아한다고 말했어.
사이버 꽃도 아니고, 만년 조화도 아니고, 진짜 장미꽃이었다구. 요즘 세상에 진짜 장미꽃에 진짜 고백이라니! 나리는 한 손으로 장미꽃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진진이의 손을 잡고선 활짝 웃었어. 그러고 보니 나리는 실제로도 참 예뻐 보였어. 진진이는 그걸 어떻게 알아차렸던 걸까?
나리 아바타의 머리카락을 예쁘게 반짝거리게 할 것 같은 햇살이 내 뺨에도 느껴졌어. 하늘에는 선명한 뭉게구름이 떠 있었어. 구름을 보니 네 생각이 났어. 그제서야 혹시 네가 아프거나 네게 무슨 일이 생겨서 체육대회에 오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
그래서 어젯밤 네게 찾아가게 되었던 거야. 네 걱정이 되기도 하고 왜 안 온 걸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널 직접 보고 싶었어. 체육대회에 네가 오기를 고대했던 건 농구팀 아이들만이 아니었거든. 나도 널 진짜로 만나서 네 눈을 바라보며 얘기하고 싶었어.
그렇지만 네가 날 만나 주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됐어. 비밀 학급회의 때 네가 내 비밀쪽지를 차단해 버린 이후로는 네게 쪽지로든 대화로든 말을 걸어 보지 않았잖아. 이메일을 보낼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답장이 없을까 봐 겁났어. 그래서 무작정 네‘방 문을 두드렸던’거야.
‘방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내가 만들어 낸 말이야. 나는 밤중에 나리 방으로 놀러가곤 했거든. 나리 방 홀로바타 영사기를 이용해서 내 아바타를 나리 방으로 보내는 거야. 내가 방문을 두드리는 쪽지를 보내면 나리가 홀로바타를 실행하여 내 아바타를 들여보내 주곤 했어.
그래서 진짜 나리랑 내 아바타랑 둘이 만나는 거야. 그러고 보니 나리 방에 가 본 지도 꽤 되었네. 혹시 나리는 이제 나 대신 진진이를 불러서 노는 걸까?
밤중에 남의 방 문을 두드리는 게 예의바른 행동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네가 그렇게까지 놀랄 줄은 몰랐어. 내가 짓궂었다는 건 인정해. 네 수많은 쪽지에 하나도 답하지 않고 무조건 네 방으로 가겠다고만 했으니까.
은은아, 왜 내 방에 오려구?
일단 나랑 얘기부터 하자, 은은아.
아니면 내가 네 방으로 놀러가게 해 줘.

사실, 네가 그렇게 다정하게 말했기 때문에 좀 안심이 되기도 했어. 난 네가 나한테 화가
난 게 아닐까 고민했으니까. 그랬다면 아예 접속을 끊어 버리면 되는데 넌 그러지 않았지. 넌 결국 홀로바타 프로그램을 실행해 주었어.
내 고집으로 네 방에 들어가긴 했지만 당황한 건 오히려 나였어. 솔직하게 말할게. 널 보고 많이 놀랐어. 물론 처음엔 진짜 네가 네 아바타랑 뭐가 다른지 잘 몰랐지. 넌 네 아바타랑 똑같이 생겼으니까. 넌 휠체어에 앉아서 멀뚱히 서 있는 날 올려다보며 웃었어. 네 진짜 눈동자는 너무 또렷해서 나를 흠칫 놀라게 했어. 하지만 내가 놀랐던 건 네 눈동자 때문만은 아니야.
“안넝?”
네가 말했어.
“나는 다…, 다…, 다영이야.”
또 네가 말했어.
‘알고 있어.’
난 속으로 생각했어. 모를 리가 없잖아. 하지만 네가 다영이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건 사실이었어. 왜냐하면 너는 얼굴을 이상하게 일그러뜨리며 힘겹게 말을 했거든. 발음도 이상했어. 천천히 더듬거리며 네가 또 말했어.
“만…, 만나서 반가, 반가어.”
그러면서 너는 슬며시 왼손을 내밀었는데, 그 때 네 몸 전체가 심하게 떨렸기 때문에 보기에 안쓰러웠어. 당황한 내가 선뜻 네 손을 잡지 못하자 너는 손을 컴퓨터 자판으로 옮겨 뭔가 누르기 시작했어. 그 때 내 방의 보조 모니터로 쪽지가 도착했어. 네가 보낸 거였어.
나는 지체부자유자야. 보다시피 몸이 불편해.
하지만 왼손은 자유롭게 쓸 수 있어. 오른손도 약간은 쓸 수 있어.
그래서 컴퓨터는 잘 할 수 있어.

“그러면 너는, 아니 네 아바타는 음성장치를 쓰지 않고 자판을 이용해서 말하는 거야?”
내가 말했어.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고작 그거였다니. 사실 다른 할 말이 없었거든. 너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어.
“네가 체육대회에 오지 않아서, 걱정이 되어 찾아왔어.”
“으응. 고…, 고마어.”
“그럼 난 갈게. 잘 시간이 지났어.”
“자알, 잘 자아.”
그렇게 후다닥 돌아와 버린 후, 나는 금방 잠들 수가 없었어. 네게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솔직히 네가 좀 무섭기도 했어. 달리기하다 다친 무릎이 아팠던 것도 아닌데 자꾸 눈물이 났어. 날 이해할 수 있겠니?
오늘이 토요일이라 다행이야.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니까. 지금 나는 너희 집으로 가는 중이야. 아침에 네가 날 집으로 초대하는 이메일을 받아 보고 정말 기뻤어. 일찍 일어나서 빨리 이메일을 보았으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에 늦잠을 잔 게 후회스러울 지경이었어. 이제 너랑 내가 직접 만난다는 생각에 맘이 설레기까지 해. 너랑 많은 얘기를 하고 싶어.
나에게는 한꺼번에 두 명의 친구가 생긴 셈이야. 진짜 다영이랑 다영이 아바타. 두 명 모두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좀 쑥스럽긴 해. 항상 네가 먼저 손을 내밀었는데 내가 머뭇거리며 제대로 잡아 주지 않았잖아.
나도 진진이처럼 진짜 장미꽃을 가져갈까 생각도 했지만, 친구끼리 그러는 건 좀 어색할것 같기도 해. 대신에, 좀 있다가 네 방으로 들어가면 내가 먼저 악수를 청할게. 넌 왼손이 더 편하니까 나도 왼손으로 하는 게 좋겠지? 방금 허공에 대고 연습도 해 봤어.
손을 내밀면, 네가 반갑게 내 손을 잡아 줄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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