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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서 그림 찾기 "앵그르에서 칸딘스키까지" 전시회를 다녀와서

유채린 기자 5레벨 2015.01.03 16:45

앵그르에서 칸딘스키까지.

미술 애호가인 필립스 부부가 모아온 작품을 전시회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있다.

필립스 부부는 예술가들의 진정한 목소리를 듣고 싶어 했고, 어려움에 처한 화가 들을 아낌없이 지원 했으며, 실험적인 예술가들을 후원 하였다.

이 전시회는 필립스 부부가 모아온 작품 중 피카소, 고흐, 마네, 드가, 세잔, 모네, 잭슨폴록 등 68명의 화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런 명작들 중에서 눈에 띄는 작품이 있었는데 바로 피카소의 <푸른 방> 이라는 그림이다.

그 이유는 <푸른 방>이라는 그림 밑에 한 남자의 초상화가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필립스 컬렉션의 큐레이터는 그림의 가장자리의 붓터치가 다른 것을 보고, 그림뒤에 또다른 그림이 존재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이 발달해서 그 뒤에 숨어있는 그림을 x-레이로 볼 수 있었다.

추측한지 54년 만의 일이었다.

왜, 그림위에 다시 그림을 그렸을까?

아마도 처음 그림을 그렸을 때 돈이 많이 부족했던 시절 이었는데, 초상화의 주인이 오지 않아서 그위에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이렇게 피카소의 청색 시대를 대표하는 <푸른 방>이 탄생한 것이다.

 

 

 

피카소의 <푸른 방>

 

 

<푸른 방> 밑에 있는 수염난 남자의 초상화

 

 

 

 


 

이런 그림이 또 있을까?

마치 숨은그림을 찾는 것처럼 그림 속의 그림을 찾아보았다.

 

그 첫번째는 알로리라는 초상화 전문화가가 그린것으로 추정되는 <이사벨라 로물라 드 메디치의 초상화>이다.

이 그림은 메디치 가문의 한 여인을 그린 것인데, 카네기 미술관의 연구자들은 16세기 르네상스시대 인물의 초상화가 19세기 엘리자베스풍 으로 그려진 것에 의심을 가졌다.

그리고 페인트가 갈라진 틈 사이로 밑에 그려진 또다른 그림이 있음을 확신했다.

x-레이 분석을 통해 밑의 그림을 확인하고, 원래의 그림을 복원했다.

이렇게 메디치가의 딸이었으며 스페인 톨레도 지방의 왕비였던 이사벨라의 모습을 21세기의 우리가 보게 된 것이다.

 

 

 

19세기에 다시 그려진 <이사벨라 로물라 드 메디치의 초상화>

 

 

 

알로리가 그린 원본 <이사벨라 로물라 드 메디치의 초상화>

 

 

 

그림 복원 과정

 

 

 

두번째 그림은 조르조 바사리가 그린 그림,  피렌체 베키오 궁 500의 방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의 비밀이다.

루벤스가 그린 <앙기아리 전투> 그림은 다빈치의 그림을 보고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정작 다빈치의 그림은 사라지고 없어서 많은 학자들이 그 그림을 추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세레치니라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스의 한 연구자가 이 그림의 행방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사리가 그린 그림 밑에 숨어있다는 것이다.

사실 조르조 바사리의 그림에는 작은 깃발이 있는데, 여기에는  이탈리아어로 " cerca trova"라고 쓰여져 있다.

이말은'찾으라, 그러면 발견하게 될 것이다'란 것이다.

이것을 단서로 세레치니는 베키오궁의 방을 수색하기로 했다.

레이져로 1cm씩 띄어가며 벽을 스캔한 결과, 뒤에 숨겨진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프레스코화 <앙기아리 전투>이다.

다빈치는 이 그림을 의뢰받아 그리던 중에 윗부분이 빠르게 말라버려서 그리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그후 다시 리모델링을 의뢰받은 바사리가 그림을 덮으면서 걸작을 덮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 cerca trova"라는 메시지를 남긴 것이 아닐까?

 

 

베키오 궁전에 있는 바사리의 프레스코화

 

 

가운데 부분에 있는 초록 깃발에 있는 "CERCA TROVA"

 

 

과학기술로 드러난 다빈치의 <앙기아리 전투>

 

 

다빈치가 남긴 <앙기아리의 전투>를 위한 스케치

 

 

 

루벤스마저도 모방한  <앙기아리 전투>

 

 

 

  

세 번째 그림은 반 고흐가 그린 <잡초들과 꽃이 있는 정물> (1886)이다.

독일의 크뭘러 뮬러 박물관이 이 그림을 구입했을 때, 이 그림이 고흐의 것인지 아닌지 논쟁이 있었다. 고흐의 일반적인 작품은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은데, 이 그림은 크기가 크고, 고흐의 서명의 위치도 다른 그림과 달리 오른쪽 상단 모서리에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이 그림은 고흐의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돈이 없던 파리 시절에 동생 테오에게 커다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동생 테오는 앤트워프 미술학교 수업에서 사용된 캔버스를 재활용하자고 했고, 고흐는 이것을 받고는 두 레슬러 때문에 행복하다는 편지를 동생에게 보냈다고 한다. 가난한 화가 고흐는 재활용한 캔버스로 자신이 담고 싶은 정물을 캔버스 가득 담을 수 있었다.

 

 

 

고흐의 <잡초들과 꽃이 있는 정물>

 

 

 

그림 속에 숨어있는 두 레슬링선수 그림

 

 

 

네 번째 그림은 네덜란드 화가 핸드릭 반 안토니센의 <스케브닝겐 해변의 풍경>이다.

이 그림은 배니쉬(마감제)를 벗겨내는 작업을 하던 복원화가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녀는 이 그림이 조용한 해변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 좀 수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복원작업을 했는데, 먼저 하늘의 배니쉬를 벗겨내자, 고래의 지느러미가 보였다. 그 지느러미가 주변을 살살 벗겨냈더니 고래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몰려있고 깜짝 놀라있던 까닭을 알게 되었다. 복원 팀은 원래의 그림을 복원시키기로 결정했다.

고래를 지운 까닭은 무엇일까? 그림을 그린 시기였던 17세기 초 네덜란드는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으며 해변에는 죽은 고래가 자주 밀려왔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죽은 고래의 등장은 불길한 것이었고, 그것이 그림 속의 고래를 사라지게 한 이유였다. 지금 영국 캠브리지의 피츠윌리엄 박물관에서는 조용한 해변이 죽은 고래 때문에 떠들썩해진 <스케브닝겐 해변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복원 이전의 핸드릭 반 안토니센의 <스케브닝겐 해변의 풍경>

 

 

복원 후 고래가 누워있는 <스케브닝겐 해변의 풍경>

 

 

 

다섯 번째 그림은 스페인의 화가 고야가 그린 <라몬 사투에 판사의 초상화>이다.

이 밑의 그림은 나폴레옹의 동생이고, 짧은 기간 동안 스페인을 다스렸던 요제프의 초상화이다. 많은 사람들은 고야가 일부러 자신의 그림을 감추기 위해서 판사의 초상화를 그렸다고 말한다.

고야는 왜 요제프의 초상화를 숨긴 것일까?

고야는 카를로스 4세가 왕일 당시 궁중화가였다. 그러던 1807년 스페인에 나폴레옹이 쳐들어오고 나폴레옹의 동생 요제프가 호세 1세라는 이름으로 왕이 된다. 스페인 사람들은 저항을 했고, 결국 1813년 스페인에서 쫓겨나게 된다. 아마도 호세 1세의 초상화를 그렸던 고야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놓였을 것이다. 그는 그래서 요제프 초상화 위에 자신의 친구인 판사를 그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야의 그림 <라몬 사투에 판사의 초상화>

 

 

 

그림 속에 숨어있는 호세 1세의 초상화

 

 

여섯 번째 그림은 또 다른 피카소의 그림, <늙은 기타리스트>라는 그림이다. 피카소의 청색시기 작품으로 가난하고 비쩍 마른 노인이 기타를 끌어안고 연주하는 유명한 그림이다. 기타리스트의 뒤통수 부분을 잘 보면 여자의 얼굴이 보인다. X-레이 분석 결과, 그림의 스케치는 피카소가 쓴 편지에 있었는데, 그림은 이 캔버스에 그리다 만 미완성이었다.

 

 

 

피카소의 <늙은 기타리스트>

 

 

 

피카소가 노트에 쓴 스케치가 엑스레이 판독 결과 밑에 숨어있다. 기타리스트의 뒤통수에 여인의 얼굴이 보인다.

 

 

 

마지막 작품은 점묘법으로 유명한 조르쥬 쇠라의 <분을 바르는 젊은 여인>이라는 그림이다.

쇠라는 미스 크노블라슈라는 모델이 화장하는 것을 그림으로 그렸는데, 사실 그녀는 쇠라의 애인이었다. 그리고 그 그림 안에 자신의 모습을 그린 액자를 넣었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본 한 친구는 크노블리쉬와 쇠라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림 속에 화가를 넣는 것은 너무 코믹하다고 평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쇠라는 당황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지우고 꽃 그림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쇠라의 그림 <분을 바르는 젊은 여인>


 

 

그림 속에 숨어있는 쇠라의 자화상 액자 (왼쪽 위)

 

 

 

세상을 한번 바꿔 놓은 수많은 기술들, X-레이와 레이저와 같은 과학기술로 우리는 명작들 뒤에 숨겨진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림을 복원하는 기술 역시 과학기술의 발전이 만들어 낸 것이다.

또한, 명작들을 미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도 있었다.

그 덕분에 몇 십년에서 몇 백년 동안 우리가 결코 알 수 없었던, 추측만 할 수 있었던 그런 그림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과학기술과 역사학의 멋진 합동작전이 없었다면, 우리가 멋진 그림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알 수 있었을까?

 

 

 

 

 

 

 

 

 

글쓰기 평가현수랑 기자2015.01.05

와~, 재미있는 주제의 멋진 기사 잘 읽었어요. 흠잡을 곳이 없네요. 미술 애호가인 필립스 부부가 모아온 작품을 전시회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있다. > 작품의 전시회가 요 부분만 수정하면 좋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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