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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시장>>의 인상깊었던 장면들을 떠올리며...

윤민지 기자 6레벨 2015.01.24 04:50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국제 시장>>을 재미있게 보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를 볼 때 나온 예고편을 보니, 광산이 무너져서 주인공 같은 사람이 다치는 것이 나와서 별로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온 가족이 <<패딩턴>>을 보러가자는 말씀을 하셔서...한국어 더빙을 한 <<패딩턴>> 보다는 <<국제 시장>>을 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았어요. 나와 어머니는 <<국제 시장>>을, 남동생과 아버지는 <<패딩턴>>을 보게 되었어요. 거의 등 떠밀려 <<국제 시장>>을 보게 된 것이지요....

    

<<국제 시장>>을 보는 내내 많이 울고 웃으면서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대한민국을 바라볼 수 있었어요.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3가지 장면을 고르라면 아래와 같았어요.

    

첫째, 덕수가 독일의 광부로 일하러 갔을 때 간호사로 일하러 온 영자라는 여자와 사귀게 되요. 영자가 덕수와 가까워지고 나서 왜 자신이 한국에서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독일’에 와서 일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지 않냐고 해요, 덕수가 “어떤 가난한 집의 장녀일 테고, 동생들이 많아서 돈을 벌러 올 수 밖에 없는 상황 이었겠죠”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어요. 제가 『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 라는 책에서 보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 장면과 많이 겹쳐졌어요.

 

    

 <1936년부터 1977년까지 서독으로 간 광부는 8천여 명이나 됐고, 간호사는 1만명을 넘었습니다. 그러니까 준호의 큰고모와 고모부는, 물론 가난한 식구들을 위해서 서독으로 가기도 했지만, 나라에서 돈을 꾸어 오기 위해 그 먼 나라로 보내진 셈이지요...... 그 당시 큰고모는 독일 병원에서 받은 월급 7백 마르크에서 6백 마르크는 꼬박꼬박 한국에 보내고 나머지 백 마르크를 가지고 어렵게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큰고모가 보낸 돈이, 일곱이나 되는 동생들을 교육시킬 수 있었던 밑천이 된 셈입니다......“그때는 병원에서 수술 환자를 마취할 때 가스를 사용했는데 환자들 수십 명을 치다꺼리하다가 기숙사에 돌아와 누우면 연탄가스 먹은 것처럼 몸이 말을 안 듣더라고, 새벽에 간신히 일어나서 빵 조각을 입에 물면 또 고향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고”...그 당시 광산에서 일하던 광부들은 석탄을 캐는 막장에 도착하면 이런 인사를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글뤽 아우프”...‘지하에서 사고 없이 일하고 살아서 지상으로 돌아가자’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광산에서 가스가 폭발해서 목숨을 잃거나 연탄더미에 깔려서 크게 다친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출처:『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

 

 1936년 가난한 나라 한국에서 돈이 없어서 독일에 차관을 빌리기 위해서 간호사와 광부를 독일로 보내던 시대를 지나서 지금 2015년 현재, 한국에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몰려오고 있대요. 나는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영화에서 나오는 한 장면처럼, 많은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3년 전, 블루시아는 산업 기술 연수생 신분으로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을 떠나 서울로 왔습니다....그러나 고된 노동과 독한 냄새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외국인 노동자를 아예 노예 취급하는 한국 사람들의 태도였습니다....월급을 40만 원씩 주기로 한 사장이 여섯 달이 지나도록 “통장에 잘 넣고 있다.”라고만 할 뿐 그 통장을 보여 주지 않다가 결국 빈손으로 내쫓았다는 얘기, 일자리를 옮기고 나서 못 받은 월급을 받으러 갔가가 두달치밖에 못 받고 난데없이 나타난 힘센 남자들로부터 협박을 당했다는 얘기 따위를 묵묵히 듣고 있기가 참 부끄럽고 답답했거든요.>- 출처:『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

 

 저는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옛날을 잊지 말고, 지금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따뜻한 손길을 보낼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그 시대를 살아주신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둘째, 덕수가 베트남 전에 기술자로 갔다가 국제시장의 <꽃분이네> 가게로 돌아왔는데, 영자가 울면서 “다리가 왜이래?”라면서 넋이 나간 듯 반복하며 덕수를 콩콩 치는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덕수가 어릴 때, 가족들이 모두 흥남철수 때 빅토리아호를 타게 됩니다. 그런데, 덕수는 바로  아래 여동생 막순이를 등에 업고 빅토리아호를 오르다가 다른 어른의 손에 의해 동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아버지가 여동생을 찾기 위해 배 아래로 내려가면서 부산 국제시장의 <꽃분이네>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합니다. 덕수는 고모의 가게인 <꽃분이네>에만 있으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고 믿었는데, 고모가 돌아가시고 술주정뱅이 고모부는 <꽃분이네>를 팔려고 합니다. 덕수는 여동생 끝순이의 결혼 비용과 <꽃분이네>를 인수할 비용을 벌기 위해서 베트남 전에 기술자로 참여하게 됩니다. 그런데, 베트남 전에서 피난민을 구하다가 다리에 총을 맞게 됩니다. 다행히 가수 남진과 한국군의 도움으로 살아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한 쪽 다리를 다쳐 남은 평생 다리를 절뚝거리게 되었습니다. 만약 나와 가까운 사람이 갑자기 불구가 되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나는 이 영화에서 아빠가 항상 흥얼거리시는 노래가 가수 남진의 노래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수 나훈아는 경상도 출신, 남진은 전라도 출신 가수라서 사랑받는 곳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방신기의 멤버 정윤호가 가수 남진의 역할을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도 했고요. 영화의 한 컷 한 컷과 인물들이 정말 재미를 더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기업가인 정주영 회장, 디자이너인 앙드레 김, 씨름 선수 이만기의 출연으로 정말 그 시절이 그대로 느껴졌어요.

 

 

 <1950년 12월24일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흥남 철수 작전 마지막에 남은 상선이었는데, 10군단 소속의 민간인 고문관 현봉학과 에드워드 알몬드 10 군단장, 그리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의 결단에 따라 선적했던 무기를 전부 배에서 내리고 피난민 1만 4천 여명을 태워 남쪽으로의 철수에 성공함으로써, 가장 많은 사람을 태우고 항해한 배로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있다고 한다. 또한, 절박한 피난길 중에 사람 많아 비좁은 배에 5명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도 했다.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는 흥남철수작전 기념비에는 10만명의 인명을 구한 6명의 영웅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출천: 위키백과

    

 <내가 살아왔던 얘기는 여기까지야. 되짚어보니 참으로 파란만장 했던 것 같아. 쌀가게 배달부로 시작해서 현대그룹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기까지 참으로 힘든 나날이 많았지. 너희들도 분명 뭐든지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할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말이야. 그러니 살면서 어려운 일, 힘든 일과 부딪치더라도 기죽지 말고 좌절하지 말았으면 해. 늘 당당했으면 좋겠어. 잠시 피하기 보다는 정면승부를 했으면 해. 너희들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이 말을 명심했으면 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출처:『10대를 위한 가슴이 시키는 일-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셋째, 내가 가장 많이 울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아마도 덕수가 동생 막순이를 찾는 장면이었을 거여요.  영화 안에서 동생 막순이는 흥남철수 직후, 바로 미국으로 보내져서 미국인 부부에게 입양이 되었대요. 그래서 한국어를 할 줄 모르지요. 처음에 상황을 영어로 열심히 설명해주다가, 자기가 오빠와 헤어지기 전에 자기에게 계속 한 말을 또렷하게 기억하면서 “여긴 운동장이 아니다...놀러온거 아니다"라고 울먹일 때 극장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저도 굉장히 많이 크게 흐느꼈어요.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이산가족들이 많다고 해요. 아마 덕수 할아버지처럼 나이가 지긋해서 더 이상 이산가족을 만나기는 힘들 것 같아요. 부모나 형제자매와 연락이 안되고 생사여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덕수 할아버지가 나중에 아버지에게 열심히 살았지만 너무나 힘들었다고 흐느끼는 장면에서 다시 한번 울컥 눈물이 났어요.

 

 

 

 <1983년 6월30일 KBS 생방송으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을 방송했었다.... 원래는 약 3시간 가량 방송하려고 했었는데, 5일 동안 약 5만여명의 이산가족이 방송국을 찾았고, 500여명이 이산가족을 찾았다고 한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이 프로그램의 주제곡이 흐르는 방송국에서 30여년 만에 만난 이산가족들이 흘리는 눈물은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그래서 그 프로그램은 그 해 11월 14일까지 138일간 릴레이 연장 방송되었다>

(출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1/12/2015011200759.html)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1950년부터 지금까지 여행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오늘날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그 힘든 시대를 열심히 살아주셨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무한한 감사의 마음이 들었어요. 나도 앞으로 내게 주어진 시대를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정말 감사합니다.

 

   

글 : 윤민지 기자

    

글쓰기 평가현수랑 기자2015.01.26

영화와 일치하는 다양한 자료로 친구가 느낀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은 물론 당시의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는 정말 멋진 기사예요. 어른 기자가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네요. 평가보다는 감탄을 남겨요. 정말 잘했어요! ^^

댓글1

  • 윤민지 6레벨 2015-01-2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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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요즘 제 고민은 글을 쓰면 재미있어서 계속 길어져요...어디서 잘라야될지 모르겠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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