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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수도가 경기도 수원이 될 뻔 했다고??(25)

김은서 기자

조선의 성군 가운데 한 명으로 뽑히는 정조 대왕은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왕으로 유명하다. 정조의 아버지는 사도 세자이다. 사도 세자는 영조의 늦둥이 아들로 태어나자마자 세자로 책봉되고, 아기 때부터 영특하였지만 지나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정신 질환을 겪으며 아버지인 영조가 뒤주에 가둬 죽인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죽이는 것을 직접 본 정조는 이후 왕위에 올랐을 때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고 당당히 외치며 즉위했다. 그 이유로 위험을 느낀 신하들은 정조를 여러 차례 암살 시도했으나 가까스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정조 대왕은 할아버지 영조가 시작했던 탕평책을 이어가고, 정약용이라는 실학자를 통해 백성들에게 널리 도움을 준 동시에 수원화성을 건설한 효자 왕으로 지금까지 칭송받고 있다.  (출처 NAVER)   그렇지만 정조는 단지 아버지 만을 위하여 수원화성을 건설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정조는 다른 이유로 수원화성을 건설했다. 당시 한양은 이미 권문세족들과 부패한 관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들은 부패를 일삼고 권력을 남용했으며 심지어는 뇌물을 받고 관직을 팔기도 했다. 그런 한양은 관리들 때문에 이미 검게 변해가고 있었던 터 였다. 정조는 자신의 뜻을 방해 없이 펼치고 싶어했다.   한양은 그의 꿈을 펼치기에는 너무 부패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수도 천도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 수도로 수원을 정하였다. 수원은 경기도에 있을 뿐만아니라 그런 부패한 관리들의 세력이 적었다. 그리고 그런 정조의 꿈의 한 걸음이 배다리였다. 배다리는 정조가 아끼던 정약용이 직접 구상하였다. 배다리는 세미원에 방문하면 직접 건너가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정조의 두 걸음이 바로 수원화성이었다. 예비 도읍지에 성을 지으면 그 곳에 오래 머물 수 있기에 좋았다. 또한 그 곳의 동태를 살피기에도 알맞아서라도 수원에 성을 지었다. 대부분 나라에서 성을 지으면 농삿일을 하던 농부들은 농사를 포기하고 성을 지으러 가야 하는데 농사를 한 번 망친다면 1년 동안은 먹을 것이 없다. 그래서 농부들 뿐만아니라 농부의 가족들까지도 모두 굶게 된다. 그러나 수원화성 공사는 백성들에게 오로지 나라를 위한 희생만을 요구하지 않았다. 수원화성에 동원된 모든 사람들은 일당을 받으며 일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공사에 끌려나가도 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또한 공사 중에도 정약용이 발명한 거중기를 통해 공사의 효율은 높이면서 일손은 덜고 안전성도 높였다. 거중기는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만든 기구인데, 조선 시대에 그만큼의 과학 기술이 발전했다니 정말 놀랐다. 또 공사장 근처에 저수지를 두어 공사에 필요한 물을 쉽게 얻도록 했다. 수원화성이 다 지어지고 모든 준비가 되었지만, 갑작스럽게 정조 대왕이 승하하면서 수도 천도의 꿈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조선의 수도는 여전히 서울이었다. 하마터면 대한민국의 수도도 경기도 수원이 될 뻔 했다. 백성에 의해 지어지고, 백성을 위해 지어진 수원화성은 현재 경기도 수원에 남아 있다. 현재 수원화성에서는 행사도 많이 열리고 재미있는 공연과 체험도 한다. 한때는 수도가 될 뻔 했던 수원의 향기를 맡아보고 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출처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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