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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들여 쓴 독일 기사 미리보기 (미완성이에요...) 제발 댓글 좀 부탁해요....

손태림 기자 5레벨 2020.08.14 18:26

*오타가 많을 수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1. "사콘느" 바흐 BEV 1004 무반주 바이올린 타르티타 2번 d단조

제가 들어본 음악 중에 가장 위대한 건 두 음악이에요. 
하나는 이론에 여지가 없는 베토벤의 9번 교황곡이죠.
그리고 또 하나는 단 한 대의 바이올린 선율로만으로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감동을 능가하는 명곡.
요한 세바스티안 자흐의 무반주 오케스트라 파르티타 2번 바로 사콘느예요 한세상 살아낸 인간의 비극과 환희를 모조리 네 줄의 현에 담은 듯한 곡이죠. 그래서 어지간히 연마한 기교만으로는 감동을 줄 수 없는 곡이기도 하죠. 인생의
회한을 품은 원숙한 손으로 활을 그어야 제맛이니까요.
그 곡의 심오하고 복잡한 감성이 독일을 닮았다고 하면 억지일까요? 비극을 치유하는 아픔과 반성 그리고 희망말이예요. 어쨌든 제가 아는 한 최고의 사콘느 연주자가 한 명 있어요. 바로 그 분은 1992년에 88세의 일기로 타계한 나탄 밀슈타인 이예요. 엄격하고 관조적이면서도 격정이 넘치는 연주를 펼쳤죠. 그분은 정말 대단한 분이예요. 사콘느와 함께 기억에 남을 거예요 제1장 끝
번외
<독일에 궁금한 것에 대해 얘기해 봐요>

1.통일: 동서로 나뉜 채로 냉전을 겪고 드라마틱하게 합친 나라니까,통일 과정에서 주변 관련국들의 이혜관계를 어떻게 풀었는지,막대한 비용을 치르고도 어떻게 오늘날  한 손에 꼽히는 경제력 순위를 유지할 수 있는지. 여전히 갈라선 한반도에 사는 우리로선 그들의 경험이 참고가 될 것 같아요.

2.양면:독일은 근대 이후 세계사의 무대에 단연 주역이었어요. 루터는 서양 세계관의 축을 흔들었고 구텐베르크는 미디어의 지평을 열었죠. 괴테,칸트 같은 위대한 지성과 수많은 과한자들. 하지만 가장 악랄했던 악역이 모든 명성을 덮었죠. 그들의 번영은 시련의 기억 위에 서 있어요. 그래서 여전히 낙관할 수 없는 독일이 짊어진 양면을 알고 싶어요.

3.다양성: 독일은 오랫동안 단일국가가 아닌 많은 영지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다연히 지역별로 독립된 문화와 경제 체제가 유지되었을 테고, 그래서 독일 지방자치의 근간인 지역 다양성을 알아보고 싶습니다.

제2. "작은 돌"

깨진 돌조각 또는 돌덩어리 흔한 공사판 같은 데 널린 콘크리트 파편 같은 거죠. 이걸 얼마에 사실 건가요? 맞아요. 그런 걸 왜 돈 주고 살까요? 발에 차여도 줍지도 않을 텐데.
그렇죠? 보석도 아니고 모양이 특별한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말이예요. 이런 걸 어디서는 10유로에 판대요.
대체 어디냐 하면  베를린이예요. 맞아요 장벽의 돌이예요!
통일 독일에선 무너진 장벽의 부스러기조차 상품이 된다. 그럴듯하네요. 분단을 깨트린 화합의 상징이니까요.
그런데 그게 진짜 장벽인지 어떻게 알까요. 아무거나 주워다가 "장벽이예요" 해도 누가 알까요?  아무렴 어때요? 일걸 사람들한테 돌의 진위가 뭐 대수예요. 그들이 지불하는 건 돌값이 아닌걸요. 돌은 그저 당시의 감격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일 뿐. 돌로 표상되는 역사의 장면. 그 환희의 기억을 10유로에 산다면, 속는 셈 쳐도 아깝지 않을 거예요! 제2끝
번외
<독일 통일 역사에 한 걸음 더 나아가보아요.>
제 2에도 나왔던 베를린 장벽 무너졌던 때가 1989년이었죠.동서독 통일은 1990년이었지만요. 
베를린 장벽이 1년 먼저였어요.
국가들 간의 합의보다 민의가 앞서간 경우였죠.
민주화를 요구한 동독 사람들의 시위가 거센 파도를 일으켰고,통일을 향한 열망과 합해져서 장벽을 허문 거예요.
그 광경을 생생하게 목격한 전 세계인들도 분단을 허무는 조정에 정서적으로 동참했죠. 당시 사람들이 느낀 건 동서독의 통일을 넘어 수십 년간 지구촌을 열렸던 냉전의 종식을 맞이하는 감격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주변국들의 동의도 얻어낼 수 있었던 거겠죠? 독일 통일의 의미는 분할 점령된 나라의 주권 회복이기도 했으니까요. 미국,영국, 프랑스,그리고 소련. 2차대전이 끝나고 4대 전승국들이 독일을 나눴고,크게 서방 진영과 공산 진영 둘로 나뉜 거죠. 독일의
국력이 강해지는 걸 꺼리는 주변 나라들과 이념과 군사적으로 맞서는 강대국 틈에서말이예요... 통일은 자기네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었던거죠. 어째 지금 한국 현실과 비슷한 면이 있죠? 한반도 통일로 우리만 하겠다고 되지 않으니까요. 미국,중국,러시아,거기에다 일본까지... 그런데 좀 다른 면도 있어요. 당시 동독 주민들의 열망이 지금 북한 사람들과는 알았거든요. 그들은 스스로 동독 정권을 부정하고 장병 있잖아요. 어쨌든 통일 과정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해요.

제3. "도이치 혹은 게르만"

여러분 혹시 한미동맹 아세요? 중세 상업 도시 연맹 말이에요. 북부 독일과 발트해 연안 도시들이 무역과 해상 경로를 보호하기 위해 결성한 연맹체. 독일은 독일 스러워요. 국가명칭 부터 말이예요. 분데스레푸블리크 도이칠란트. 도이칠란트 연방공화국 이예요. 독일은 13개 주와 3개의 특별할 이뤄진 연방국가에요. 각각의 주들은 지역색과 문화를 유지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면서 도이칠란트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연장으로 결성한 형태죠. 그래서 독일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사는 주 단위로 자기 정체성을 갖는 편입니다.  같은 독일인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바이에른 사람' '튀링겐 사람' 이런 식으로 자기를 나타내죠. 그래도 월드컵 땐 독일을 응원하지만 분데스리가 경기할 땐 뿔뿔이 갈라지죠. 여러분 도이칠란트는 '도이치 땅' 이라는 뜻이겠죠?
그럼 도이치 뭘까요? 고대 독일어 '티우티스크' 혹은 라틴어 '테오디스쿠스' 에서 유래한 단어예요. 그건 민중의 말 이란 뜻 인데요.  유혹하고 고상한 언어가 아닌 보통 사람들의 말이라는 거에요. 그럼 고상한 언어는 당시로선 라틴어였을 거예요. 8세기 어느 주교가 교황에게 전달한 보고서에 나와요. "브리트니아에서 개최된 종교회의 내용을 라틴어뿐 아니라 평민들도 이해할 수 있는 민중의 말(theodisce)로도 낭독하였다"라고요. 아무튼 그 단어의 전형은 11세기 초 어느 가게에 복수 명사로도 등장해요. 그러니까  도이치는 게르만 지역의 여러 유사한 언어를 일컫는 개념이었던 거죠.  
일만은 라인과 너머에 살던 족속들을 통칭해서 불렀던 말 이예요. 저 유명한 케사르가 갈리아를 정벌할 때 춥고 쓸모없는 땅이라고 내버려둔 뒤로,줄곧 로마제국 문명은 밖에 있는 대만족 취급을 받았죠. 그러다가 4세기경 훈족에게 밀려 유럽 저역으로 흩어졌어요. 그런데 말이예요. 로마인들이 과연 게르만족을 야만적이라고 여겼을까요?  혹시 '타키투스' 를 아세요? 고대 로마의 역사가 예요. 타키투스가 쓴 유명한 역사가 있어요. 제목은 게르마니야 인대요. 게르마니야는 타키투스가 서기 1세기경 트라얀 황제에게 헌정하기 위해 쓴 것으로, 게르만족의 기원과 풍습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로마제국 이후 오래도록 그늘에 가려져 있었는데 15세기 이탈리아 인문주의자 브라차올리니가 재발견해 출간함으로서 유럽 사회에 커다란 반항을 일으켰다고 하네요. 그런데 말이예요. 그 [게르마니아]에 기록된 게르만족의 이미지 말이예요.  대체로 이렇거든요.  붉은 빛의 금발과 메서운 푸른 눈을 가졌다. 신체가 강건하다.  전투 윤리와 정신은 고마움을 능가한다. 용감하고 충성스럽다.면하고 성실하다. 근데 이게 어딜 봐서 야만적 일까요? 권위있는 로마 지식인의 관점으로 쓴 것인데도, 너무 멀쩡하고 건실한 이미지잖아요.  하지만!!! 그게 바로 함정입니다!!! 타키투스의 평가였다는 것. 단 사람도 아니고 위대한 로마제국의 역사가 타키투스였다는 것 말입니다. 그게 함정이예요. 1500년 전후의 유럽 사람들도, 바로 그점 때문에 게르만족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겁니다. 특히, 당시의 독일 민족주의자들은 열광했죠. 소위 '독일의 정신' 이라는 것의 근거로 삼을 만났을 테니까요. 모범적인 게르만 이미지는 그 후로도 이어졌을 겁니다.  나폴레옹군에 점령당한 베를린에서 철학자 피히테가 독일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했을 때도, 프로이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가 북국강병을 꾀했을 때도 말이예요. 근면, 검소, 규율 존중 같은 긍정적인 이미의  독일 정신은 그렇게 점점 굳어져갔죠. 심지어 20~30 년 전에 나온 책에도 그렇게 나와 있을 정도였습니다. 게르만 민족성은 독일이 잘 사는 중요한 요인. 어쨌든 타키투스가 기록한 건 사실이라고요? 그러니까 그게 함정이라니까요! 라인강을 경계로 대치하고 있던 야만족에 대해, 타키투스가 긍적적으로 묘사한 이유가 무었이였을까요?
그 무렵 쇠락해가고있던 제국에 경종을 울리고,
타락에 늪에 빠진 로마인들의 경각심을 만드려는 의도였늘 거예요. 
제.3 끝
번외
<게르만족 대이동,서양세게의 새 주인공>

[아스테릭스]라는 만화를 아세요?
제목을 들으면 좀 생소하더라도 그림을 보면 아는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르네 고시니라는 분이 작가고,
알베르 우데르조라는 분이 그린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국민 만화죠. 참고로 고시니는 장 자끄 상페가 삽화를그린 『꼬마 니꼴라』의 글을 쓰기도한 (꾀돌이?) 작가입니다.
작고 영리한 아스테릭스와 덩치 큰 오벨릭스, 두 주인공이 좌우충돌 활약상을 펼치는 이 만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지금의 프랑스 지역에 갈리아족이 살고  라인강 동쪽에는
게르만족이 살았던 때입니다. 갈리아족은 골족이라고도 하는데 겔트족을 일컫는 또 다른 명칭으로, 만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바로 골족입니다.

단정한 제복을 차려 입은 로마 병사들에 비해 자유분방한 옷차림에 콧수염을 시른 골족 주인공들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자기네 땅을 점령하려는 로마제국 군대를 사사건건 괴롭히는 설저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실제로는 갈리아는 애초에 로마제국의 식민지인 속주가 된 마당이었습니다.  지금도 프랑스 지방에는 고대 로마의 유적지들이 남아 있는데 그것들을 다름 아닌 로마 속주 시절 건설된 제국 문명의 잔재들인 것입니다. `갈로 로만'문명이라고 하죠.

하지만 자존심 강한 프랑스인들은 가상의 세상에서나마 자신들의 땅인 갈리라의 원주민들은 결코 제국의 군대 앞에 순순희 굴복하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싶었나 봅니다. 정작 로마제국의 대군에 맞서 침범을 저지한 이들은 라인강 동쪽의 게르만족이었습니다.

기원전 58년에서 기원전51년까지 갈리아를 정복하고 라인강 너머까지 복속을 시도했던 율리우스 케사르는 『갈리아 전기』에 그 원정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로마인들은 안개 끼고 엄습한 숲속 땅의 거친 야만족을 게르만이라고 불렀는데, 원래 그 이름은 갈리아 사람들이 동쪽으로부터 가끔 넘어와 자신들을 위협했던 종족을 지칭했던 것으로 케사르가 이어서 부른 것입니다.

아무튼 게르만족은 케사르가 이끄는 정예군을 막아내고 로마의 유럽 원정을  라인강에서 멈추게 만든 종족입니다.  로마의 입장에서는 그곳이 워낙 척박하고 사람이 살 만하지 않아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고 하겠지만 게르만족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는 건 확실합니다. 98년경에 『게르마니아』를 쓴 역사가 타키투스는 게르만족을 묘사하면서  용맹하고 도덕적인 족속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당시 유약해지고 불건전해진 로마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과거 공화정 시대의 위대했던 로마의 정신을 일깨우련는 의도였던 것과 동시에 게르만족을 직접 접해본 이들에게서 전해들은 객관적인 인류학적 정보에 근거했던 걸 겁니다.

그렇게 라인강을 사이에 두고 로마와 대치하던 게르만족은 4세기경에 이르러 동쪽으로부터 도래한 강력한 세력에 떠밀려서 유럽의 중앙 무대와 서쪽 남쪽을 향해 대이동을 시작했습니다. 게르만족을 터전에서 밀어낸 유목민족은 바로 훈족이었죠.

그런데 세상을 바꾸고 역사 흐름의 이정표를 세우는 큰 한두 개의 단순한 요인으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군소 종족으로 구성된 통칭 게르만족의 거대한 이동은 훈족이 서진하도록 작용한 동아시아의 정세 변화, 이탈리아와 유럽, 소아시아, 북아프리카를 지배하며 일구었던 로마의 쇠락, 그리고 비옥한 새 터전에 살고 싶었던 게르만 종족 사람들의 열망과 그간 쌓아온 무력이 임계점에 도달했던 상황 등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맞몰려 때를 맞이했을 겁니다. 서양인들의 세계는 그토록 오랫동안 문명의 주역이었던 로마인, 즉 라틴 종족을 대체할 새로운 주인공을 무대 위에 세울 준비를 마친 상태였던 겁니다.

결국 서양세계 땅에 군림했던 서로마제국은 멸망하고 게르만족의 프랑크왕국이 세워지면서 세계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됩니다. 프랑스의 역사, 영국의 역사, 그리고 독일의 역사, 즉 게르만족에 의한 유럽의 역사가 말이죠.

 

제4.독일답다는것은?

 

이런 말 있는 거 아세요? 독일인들은 3명이 모여야 비로소 성냥불을 켠다. 그만큼 검소하단 얘기죠. 그리고 근면한 국민성 덕에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켰고요,독일 사람에게 라인강에 기적을 안다고 아는 척을 하면 이렇게 되물어요. "라인강에서 누가 기적을 일으켰어?"라고요. 독일인들은 그말을 안 쓰더라고요. 그저`경제기적'이라고 하죠. 어쨌든 그들은 폐허 위의 경제를 재건했으니까요. 근데요, `라인강의 기적이' 일어난 게 꼭 독일 국민성 때문이었을까요? 대략 1950년부터1970초까지, 그 시기는 세계적인 호황기였습니다. `자본주의 황금기'라고 불릴 만했죠. 서독은 물론이고, 일본,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도 경제부흥을 일으킨 때입니다. 게다가 2차대전 후에 미국이 서유럽에 원조를 쏟아붓지 않았나요? `마셜 플랜'을 얘기하는 거에요. 원조는 다른 나라도 받았었죠. 그럼에도 독일 경제는 유달리 많이 성장했어요.  그건 바로 독일인들이 근면하고! 검소하고! 실용을 중시하는! 올바른 국민성을 가졌기 때문이에요...!

 

로맨틱  가도 아세요? 독일 여행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코스죠. 그래서 한국 사람들도 많이 찾죠.... 아! 근데 왜 로맨틱 가도인지 아세요?

옛날에 로마인들이 만든 길이라서 그렇게 불리는 거에요. 독일어론 로만티셰 수트라세 아! 그리고 독일에 그 돼지족발도 맛있는데... 학센말이에요. 

슈바인스 학센이요. 슈바인스 학센은요 독일 대표 요리 중 하나인데요. 한국의 족발과는 다른 점은 돼지 발목 위부분 부위를 쓴다는 것! 소금에 절인 족발을 삶아서 익히고 오븐에서 구워내요. 겉은 바싹하고 속은 부드럽고. 주로 바이에른 지역과 남부에서 먹어요(음 맛있겠다:) 앗! 남부 지역이면 베를린에서는 못 먹냐구요? 아니요. 거기서도 팔아요. 하지만 베를린에선 또 다른 돼지 족발을 먹어줘야되요.  바로 아이스바인! 굽지않고, 

댓글10

  • 손태림 5레벨 2020-08-15 11:11

    0 0

    어렵나?;;

  • 손상원 6레벨 2020-08-14 20:51

    0 0

    사진을 좀 더 넣어주시고 더 쉽게 해주세요!!!

    너무어려워요

  • 김혜윤 6레벨 2020-08-14 19:27

    0 0

    엄청나게 기네여...... 전 이렇게 못 써여..... 근데 이게 미완성 글이라니....아마 제가 쓴 글의 2~3배 정도 될 것 갔네여...
     어쨌든 엄청 길게 잘 쓰셨네요!! 부러워여..

  • 김윤 6레벨 2020-08-14 18:56

    0 0

  • 민서현 7레벨 2020-08-14 18:55

    0 0

    너무 길어서 읽는 사람이 흥미를 잃을 것 같아요 ㅠ

  • 이정은 5레벨 2020-08-14 18:36

    0 0

    우와!! 엄청 기네여??

    • 손태림 5레벨 2020-08-14 18:37

      0

      네 미완성이랍니다^^ (찡긋)

  • 송예윤 7레벨 2020-08-14 18:28

    0 0

    미완성인데 이렇게 길어요?!

    • 손태림 5레벨 2020-08-14 18:30

      0

      네 문제는 반도 못했다는ㄱ...

  • 손태림 5레벨 2020-08-14 18:27

    0 0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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