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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나비(butterfly)_날개 없는 나비

정서아 기자 7레벨 2021.04.19 14:20

※trigger warning:: 트라우마 유발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날은,

내 인생이 끝난 날이다.

-

그날은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이였다. 유명한 발레리나를 꿈꾸던 17살의 철없던 나는, 새벽연습까지 끝내고 집에 가는 길이였다.

연습실이 집에서 멀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항상 걸어간다. 한달 후에 콩쿨인데, 너무 설렌다. 정신을 차리지 않고 나는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길을 건너려고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뀔 때까지 기다렸다가 초록으로 바뀌자 좌우를 살피고 걸어갔다. 그래, 분명 난 잘 살폈다. 잘 살폈다고 생각했는데.

-빠아아앙!!

어째서 나는 미친듯이 달려오는 트럭을 보지 못한걸까.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은 나는 붕 날라가 떨어지고 말았다. 뜨거운 액체가 머리를 타고 흘렀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함께 생각이 들었다.

'아. 얼른 집에 가서 엄마랑 아빠 봐야 하는데. 오늘 어떤 동작을 배웠고 어떤 동작을 외웠는지 자랑해야 하는데.

……내일도 발레 연습 가야 하는데.'

시끄러운 구급차의 소리와 함께 나는 깊은 암흑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

의사 선생님께서 어쩌면 평생 발레를 못 할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현실을 부정했다.

그런데, 다리가 굽혀지지 않고 몸을 지탱하지 못하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격고 나니,

그렇게 절망적일 수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나를 껴안고 펑펑 눈물을 흘리셨고 나는 조용히 내 꿈에 대해 생각했다.

일곱 살 때 처음 시작해 한 눈에 반해버린 발레.

10년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나의 꿈이 순간에 무참히 짖밟혀졌다.

-

한 달 뒤, 기대되었었던 콩쿨이 생각이 났다. 그 때 허무하게 놓쳐버렸던 꿈같은 기회. 그 콩쿨은 1년에 한번씩 열리는, 세계적인 발레리나들을 뽑아낸 콩쿨이다.

"비야."

현대무용을 전공으로 두고 있는 소꿉친구 박지민이 침대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만을 쳐다보는 나를 불렀다.

현대무용을 전공으로 두고 있는 소꿉친구 박지민이 침대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만을 쳐다보는 나를 불렀다.

"……."

"나비."

"……왜."

"……아니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입을 달싹이던 지민은 그냥 꾹 다물어버렸다. 나는 그를 한 번 쳐다본 다음에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다리를.

그리고 내 다리를 보았다.

다시 사람들의 다리를 보았다.

또 내 다리를 보았다.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다.

……이대로 다시는 걷지도 못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내가 나답지가 않았다. 누군가 나를 구해줬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지친 인생의 한숨밖에 남지 않았다.

무뎌진 걸까 무너진 걸까

근데 무겁긴 하다 이 쇳덩인

다가오는 회색 코뿔소

초점 없이 난 덩그러니 서있어

나답지 않아 이 순간

그냥 무섭지가 않아

-

1년 뒤, 희망을 잃었던 나는 기적적으로 절뚝거리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을 수 있었다. 몇 발자국 가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 한 걸 박지민이 받쳐준 게 한두번이 아니였지만 의사 선생님은 그것까지도 충분한 기적이라고 하셨다.

기적.

하.

난 이 개같은 기적이 싫었다.

쓸데없이 나에게 희망을 주니까.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무용실에서 무용을 할 수 있을거라는 빌어먹을 희망감을 주니까.

1년동안 나는 의미 없이 살았다.

18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인생을 포기했다는 게 맞는 표현인 듯 하다.

…… 새벽에 꿈을 꿨다.

나비가 날아가는 꿈을.

날개가 없어진 나비가 날아가며 멀리멀리 사라지는 꿈을.

날개 없이 난다는 건 참 모순적이다.

……어딘가 이질적인 그 생물체는 내 눈 앞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꿈을 꾸고 나자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 밤은 다리가 평소보다 가벼웠다.

침대에서 벗어나 혼자 일어섰다. 다리에 힘이 풀리지 않게 힘을 꽉 주자 다리가 지끈지끈 아려왔다.

그 상태로 나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었다.

복도로 나가 벽을 짚으며 엘레베이터로 향했다. 먼지가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지나치게 고요한 복도에는 나의 투박한 발소리밖에 울리지 않았다.

병원 1층에 다다랐다. 로비를 지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네온사인도 다 꺼진, 어스름하기엔 좀 어두운 풍경이 나를 반겼다. 하, 숨을 내쉬자 희미한 입김이 하늘로 올라갔다. 3월, 초봄이여서 해가 뜨지 않아 쌀쌀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나를 건드릴 수 없었다. 고개를 들자 저 길거리 건너편에 1년 전까지 다녔던 연습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슨 이끌림이였는진 모르겠지만 그 연습실을 향해 걸어갔다. 새벽이여서 온 도시가 고요했다. 절뚝거리며 나는 기어가듯이 그곳으로 향했다.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안겨줬던 곳인데 어째서 두렵지가 않은걸까.

연습실은 오전 9시에 문이 열리기 때문에 아직 열리지 않았다. 나는 그 연습실 입구 옆에 있는 화분을 들췄다. 열쇠가 있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새벽연습이나 저녁연습을 하기 위해 숨겨뒀던 열쇠이다. 그 열쇠를 급하게 입구에 맞추고 문을 열었다.

……절대 잊지 못할 익숙한 라일락 향기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나는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한 작은 방으로 갔다. 문을 열자 한명이 연습할 수 있을 법한 두 면이 거울인 방이 눈 앞에 펼쳐졌다.

내가 항상 발레를 열습하던 곳이였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어가다가 아라베스크를 했다. 나의 몸을 지탱하던 한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며 나는 곧 삐끗해 주저앉았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일어서 이번엔 1년 전 콩쿨에 나가려고 준비했던 발레의 시작 동작을 취했다.

……그 순간 귀신이 장난친 것처럼 스피커에서 단조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 음악에 맞춰, 절대 잊지 못할 춤을 췄다.

콩쿨에 나가기 위해 준비했던 그 춤을.

1년동안 몸이 굳어버려 전같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찢어져버릴 것 같은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는 내 다리가 가장 나를 나답지가 않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몸을 돌려 뒤를 본 다음 드미 플리에를 했다. 그 동작 마저도 무리였다. 교통사고로 뼈가 통채로 부서져버린 나의 다리는 이제 걷잡을 수도 없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하지만 아직 음악이 끝나지 않았다.

내 주변에는 관중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저 멀리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들도 보였다.

음악은 곧 피날레에 접어들었고 나는 음악에 맞춰 내 몸같지가 않은 몸을 마구 움직였다. 내 눈에서는 다리의 고통과 그동안의 한이 뭉쳐 눈물이 쉴새없이 흐르고 있었다. 피날레가 끝나고, 이제 몇십 초 안에 음악이 끝난다. 그 순간, 전의 고통이 모두 맛보기였다는 듯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함께 다리가 접혀 나는 주저앉아 버렸다.

온 몸에서 열이 올라오고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왔다.

음악의 마지막 한 구절이 내 귓가를 윙윙 울렸다. 눈 앞에서 일곱살 때 무용실에서 춤을 추던 나, 아홉 살 때 처음 나갔던 콩쿨의 나와 처음 대상을 받고 눈물을 흘렸던 중학교 2학년의 나와 같이 나의 과거들이 휙휙 스쳐지나갔다. 아, 이런 게 주마등이라는 것이구나.

음악의 마지막 저음과 함께 나는 쓰러진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내가 날개를 잃은 그때와 같이.

날개를 잃은 나비는 날개를 다시 가지지 못한다.

날개 없는 나비는,

날지 못한다.








<작가말>

분량 완전 길죠? 읽느라 수고하셨어요♡
단편보다 상하편 투표가 더 많이 나왔는데 단편으로 들고와서 죄송합니다 ㅠ ㅋㅋ끊을 데가 없어서요...
그리고 중간에 기울어진 글씨체는 방탄소년단 blue&grey 가사 중 한 부분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
중간에 나비 움짤은 하이*피님 블로그에서 퍼왔구요
이 글에서 몇 부분을 좀 짚어보자면

1. 주인공의 이름은 나비이다.
2. 주인공에게 다리는 날개와 같다
3. 주인공을 날개가 없어진 나비에 비유했다
4. 잃어버린 날개는 다시 가질 수 없다는 의미를 두고 있는 글이다
5. 주인공은 교통사고로 두 다리가 분질러졌고 성한 몸이 한군데도 없었다


입니다 ㅎㅎ 여러분도 여러분의 날개를 잃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세욥

저는 이만 레몬티와 블루문을 마감하러 가겠습니다 안뇽

아, 추천과 댓글 잊지 마셔야죠? ^^

댓글25

  • 김리안 5레벨 2021-04-24 18:04

    0 0

    늦게 봐서 너무 죄송해요....
    춫박튀하고 싶지만 자꾸 이끌려서 결국 이 댓을 달게 됬다는.....
    하튼 오늘도 고급 소설 고맙습니다!!!!

  • 신봉근 2021-04-19 17:27

    0 0

    꺄아앙(요)
    참고로 저 신나윤이예요.
    아까도 소설 봤어용ㅇ
    돌려보고 있다구욤
    암튼 비번 까먹어서 지금 댓 답니당

  • 홍서연 4레벨 2021-04-19 16:01

    0 0

    최고입니다ㅜㅜ

  • 이은채 7레벨 2021-04-19 15:17

    0 0

    이얗ㅎㅎㅎㅎㅎ

    • 정서아 7레벨 2021-04-19 15:47

      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닿ㅎㅎ!!

  • 박채란 7레벨 2021-04-19 15:10

    0 0

    사랑해요 그냥 사랑해요 사랑한다구요 사랑해ㅇ 버섯머겅(컨셉충 박채까

    • 정서아 7레벨 2021-04-19 15:47

      0

      나비: (덩실덩실)

    • 박채란 7레벨 2021-04-19 15:11

      0

      ???: 나비야 이 버섯 머거바 기쁨의 포자춤을 출 수 있을 거야

  • 민지수 4레벨 2021-04-19 14:51

    0 0

    살앙해요 서까님

  • 이화니 6레벨 2021-04-19 14:50

    0 0

    서아님 팬이된 1인.....

    • 정서아 7레벨 2021-04-19 15:46

      0

      (서아님이감동을300먹었습니다)

  • 이재경 6레벨 2021-04-19 14:48

    0 0

    왕...... 역시 서까님ㅜㅜ 감동 먹었어요 ㅜㅜ

  • 삭제된 글입니다.

    • 정서아 7레벨 2021-04-19 15:43

      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 신지우 6레벨 2021-04-19 14:38

    0 0

    아니 저 오열했자나여

    제 마음 책임져요....

    • 정서아 7레벨 2021-04-19 15:43

      0

      ㅋㄱㅋㄱㅋㄱㅋㄱㅋㅋ미안합니다

      제글을 보고 오열하셨다니.. 서아야 너 성공했다(?

  • 오유경 6레벨 2021-04-19 14:38

    0 0

  • 허유진 5레벨 2021-04-19 14:37

    0 0

    넘조아요!!!!!!!!!!!!!!!!!!

    전 서까님의 영원한 팬이에요ㅛㅛㅛㅛ(?)

  • 신주원 7레벨 2021-04-19 14:34

    0 0

    와,, 진짜 점점 어휘력?이 느시고 글 쓰는것도 느시는거 같아요.. 대단..!! 춫 박고 갑니다

    • 정서아 7레벨 2021-04-19 15:39

      0

      와 그렇게 느껴지신다니 정말 뿌듯해요..!♡ 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화니 6레벨 2021-04-19 14:25

    0 0

    와...저 지금 영화보는줄 알았어요...
    날개없는 나비 계속 연재 해주세요ㅠㅠ 

    • 정서아 7레벨 2021-04-19 15:39

      0

      아쉽게도 나비는 단편입니다 ㅠㅠㅠ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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