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어린이과학동아 어린이수학동아

통합검색
스마트키트

기자단 포스팅

글쓰기

[소설] 신작 기념 재연재 / 나의 삼일월 (完)

이은채 기자 6레벨 2021.05.08 23:08

 

 

엑스아 연재 기념으로 옛날소설 재업함니다~ 

 

끊김없이 달리는 와이드판!

 

 

 

 

그럼 갑시다~

 

 

 

 

 

 

 

 

 

 

 

 

 

 

 

 

 

 

 

 

 

 

 

 

 

 

 

 

 

「언제라도 만나러 올 테니까, 오늘을 기억해 줘.」

 

 

 

 

 

 

 

 

 

 

 

 

 

 

 

 

 

 

 

 

 

 

 

 

 

 

 

 

 살짝 열어놓은 커텐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드리운다. 그리고 묶은 머리카락을 살짝 흩날리는 선풍기 바람.

 

 7월의 평범한 아침, 나는 오늘도 노트북 앞에 앉아 바쁘게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다. 때때로 옆에 놓인 캔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셔가며 작업의 검토를 완료하고, 나는 과제의 저장 버튼을 클릭한다.

 

 

 

 “흐아암... 으......”

 

 

 

 긴 작업이 끝나자 긴장이 풀려 저절로 하품이 나온다. 굳어 있던 몸을 일으키고 팔을 쭉 뻗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그제서야 보이는 책상 위에는 껍데기만 남아 있는 캔 커피며 에너지 음료가 잔뜩 쌓여 있다.

 이렇게 철야로 과제를 해서 얻는 게 뭘까, 라는 생각도 해 봤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다. 게다가 이쪽이 잘 맞는지도 모르는걸.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커피를 마셨는데도 잠이 쏟아져오는 탓이다. 좁은 화장실 세면대에서 찬 수돗물을 연신 얼굴에 끼얹어 보지만 졸음은 가시지 않고, 마치 꿈을 꾸는 듯 몽롱한 의식이 휴식을 원한다는 듯 소파로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나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거실로 비틀거리며 돌아와 소파에 털썩 쓰러진다. 점점 더 의식이 흐려진다.

 

 

 잠에 빠지는 순간.

 

 

 

 소파 앞에 놓인 작은 텔레비전, 접이식 테이블과 선반과 책과 병, 액자, 잡동사니들이 무의식 속으로 우그러진다. 약간 딱딱한 감이 없지 않던 소파의 감촉, 밝게 비추고 있던 햇살도 빨려 들어가 버린다. 머지않아 ‘미풍’으로 맞춰 놓은 선풍기 바람 또한 시린 공기로 바뀌면 나는-

 

 무심코 눈을 꼭 감았다. 예외가 없다 하더라도 오늘은 아니길 바랐는데. 이래서 내가-

 

 

 

 “왜 그래, 누나. 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운 목소리, 누구의 목소리인지 절대로 헷갈릴 일 없는 부드러운 목소리.

 

 그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마치 빛이 울려 퍼지는 것처럼 들려왔다. 음성의 충격으로 꿈이 깨진다.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목소리의 주인은 역시 너였다. 박성현.

 

 

 

 

 

 “왜 왔어......”

 

 

 

 그리웠다는 듯이 눈꼬리를 살짝 늘어뜨리고선 나는 소파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너에게 대답했다.

 그러자 너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진서 누나 보고 싶어서 왔지”

 

 

 

 천진난만한 듯이 웃는 그의 모습에 내 얼굴에도 저절로 미소가 걸린다. 이렇게 본 것도 오랜만인 것 같다.

 

 떨어져 있던 우리는 말없이 한동안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구름 같은 포근함, 사랑스런 옷의 섬유유연제 향. 이렇게 눈물이 날 것 같은 편안함은 오랜만이다.

 

 

 

‘역시 너는 너구나.’

 

 

 

 

XXXXX

 

 

 

 

 「누나와 나는 초승달 같아. 언제나 창밖을 바라보면 은은한 달빛을 선물해 주잖아.」

 

 네가 언젠가 했던 말이다.

 

 

 

 「그치만 초승달은 금방 상현달이 되어 버리잖아? 밤하늘에 있는 시간도 짧고, 크지도 않고 그닥 밝은 것도 아닌걸.」

 

 

 

 나의 반문에 너는 그런 반박을 기대했다는 듯 답했다.

 

 

 

 「가장 밝은 만월 때는 짧잖아. 금방 불타고 꺼져버리는 불씨가 아닌 조금 옅더라도 오래 빛나는 달이 되고 싶어서.」

 

 

 

 누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라며 웃고, 오글거리는 말에 부끄러운 듯 너는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나 또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XXXXX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별안간 너는 고개를 들더니 자취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다다른 곳은 역시나, 책상 위 잔뜩 쌓인 캔의 산이었다.

 너는 미덥지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천천히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가고는, 캔을 하나하나 집어 싱크대 옆에 걸린 커다란 종량제 봉투에 던져 넣으며 나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찮은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참, 잠깐이라도 내가 없으면 금방 이렇게 돼 버린다니까. 누나 오늘도 밥 제대로 안 먹었지?”

 

 “원래는 잘 챙겨 먹거든...... 괜찮아! 잘 살고 있으니까 걱정 마! 안 챙겨 줘도...”

 

 

 

 물론 거짓말이다. 오늘만 해도 속이 쓰린 걸 봐서 빈속에 커피만 마신 게 분명하다.

 

 분명 원래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분명 과제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머리도 띵한 것 같고, 오늘 뭔가 이상하다. 네가 집까지 찾아온 것도-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갑자기 머리가 아파오며 몸이 휘청였다. 너는 들고 있던 캔 두 개를 책상에 도로 내려놓고 나에게 급히 달려왔다.

 

 

 

 “누나 괜찮아? 커피 같은 거나 마시니까 그렇지... 내가 밥 살 테니까 밥 먹으러 가자. 그렇게 살다가 진짜 쓰러진다?”

 

 

 

 나는 멍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진서 누나는 여전히 내가 챙겨 줘야 된다니까- 하며 밖에서 들려오는 너의 농담에도 묵묵히 나갈 채비만 했다.

 

 후줄근한 옷을 갈아입고 화장도 살짝. 그리고서 작은 토트백을 드니 네가 묻는다.

 

 

 

“어라, 핸드폰은 안 챙겨?”

 

 

 

 나는 문득 생각이 들어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소파 위, 책상 위, 선반과 화장실 안까지 찾아봤지만 없었다. 어디에 뒀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며 내가 당황하자 너는 킥킥거리며 가방 속에서 내 핸드폰을 꺼낸다.

 

 

 

 "그럴 줄 알고 내가 미리 챙겨두고 있었지. 충전도 제대로 안 해 놓고, 그러니까 맨날 먹통이잖아.”

 

 

 

 네가 내민 핸드폰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전원을 켜려고 했으나 검은 화면에 ‘0%’ 라는 글자만 비칠 뿐이었다. 핸드폰도 안 쓰고 있었구나. 나는 보조배터리를 연결한 핸드폰을 백 속에 넣고 집을 나섰다.

 

 빌라 계단의 창문으로는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너에게 작은 접이식 우산을 내밀고 나도 하나를 챙겼다.

 

 

 

 

 

XXXXX

 

 

 

 

 

 밥이라고 하면 역시 그 곳이었다. 우리 둘만의 맛집이자 역사적인 장소. 점점 흐려져 가는 머릿속이었지만 우리가 처음 갔던 곳이라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메뉴는 닭갈비. 지금은 코로나에 식사 시간도 아니라 사람은 별로 없지만 예전에는 많았던 것 같다. 사람이 꽉 들어차 왁자지껄한 식당 내부의 풍경이 어렴풋이 기억에 비친다.

 

 

 나는 식사를 하며 너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봤지만 그는 어느 하나 명확히 대답해 주지 않았다.

 

 식사가 끝날 무렵이자 볶음밥을 기다리고 있을 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너는 자기 것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는 토트백 안에서 내 핸드폰을 꺼냈다. 이제 20%정도 충전된 내 핸드폰에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070으로 시작하는 스팸 메시지.

 나는 메시지의 내용을 곁눈질로 확인한 뒤 삭제했다.

 

 핸드폰에는 수많은 메시지 수신 이력이 남아 있었다. 읽지 않은 메시지에는 스팸 메시지와 안전 안내 문자가 잔뜩 이었다. 이들을 모두 삭제하고 나니 남은 새 메시지는 없었다. 아마 10 정도의 새 메시지가 있다고 떠오른 카톡도 마찬가지리라. 카카오 광고, 카카오게임즈 광고 등을 모두 지우고 나면 남은 건-

 

 

 나는 카톡에 뜬 새 메시지 알림의 숫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핸드폰을 도로 가방에 집어넣었다. 다른 사람들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날 위해 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까.

 

 

 

 

 

XXXXX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거리로 나왔다. 푸른 하늘에 밝은 햇살, 소나기가 지나간 구름과 습함이 여름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삼삼오오 모여 놀러 다니는 학생들, 한창때의 연인들, 행복해 보이는 가족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한산해 보인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떻게든 원래대로 살 방법을 찾는 모래 위의 꽃과 같은 심상.

 그 길이 선인장이 되는 것뿐이라 해도.

 

 

 활기로 가득찬 거리는 우리가 있어도 위화감이 드는 곳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우리 밖에서 데이트나 할까?”

 

 

 

 네가 나를 바라보며 건넨 한 마디에 가슴이 뛰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임으로 그에 응했다. 말할 수 없는 추억이 벅차올랐다.

 

 

 

 

 

 

XXXXX

 

 

 

 

 

 쇼핑몰, 오락실, 영화관을 우리는 돌아다녔다.

 

 

 신 나게 태고를 두드리고 풀 콤보가 뜬 화면을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 네가 따라 웃어 줘서 기쁘다.

 배가 부른 채였지만 캬라멜 맛 팝콘도 한 통씩 샀다. 영화는 나의 취향에 따라 로맨스 영화로 정했다. 유명한 감독도, 배우도 없었지만 분위기에 어울리는 영화.

 

 팝콘을 들고 표를 내미는 나를 점원은 오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지금 그런 같은 건 상관없었다. 네가 옆에 있었으니까.

 

 점원의 태도에 나의 표정이 살짝 흔들리자 관에 들어갈 때 너는 내 손을 더 꽉 잡아 주었다.

 

 

 

 

 알고 있었던 따뜻한 온기, 달콤한 팝콘과 너의 캬라멜 맛. 흔해 빠진 행복이라도 분명 우리라면 찾을 수 있어.

 

 조금 재미없는 영화라도 좋았다. 지금이라면 세상이 끝나도 괜찮아. 마지막 기억이 이거라면.

 

 

 

 

 

 

 

 

 

 

 

 

 

 

 

 

 

 

 영화가 끝났다. 진부한 스토리에 감성 팔이로 끝나는 엔딩이었다.

 다 먹은 팝콘 통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화장실에 들른 후 우리는 카페로 향했다.

 

 어느새 어둠은 해를 집어 삼키고 우리의 거리에는 가로등이 하나 둘 씩 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늘에서 빛나는 은은한 초승달. 어둠을 마주하자 머리 아픔이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역 앞에 위치해 규모가 꽤 큰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너는 핫 초콜릿, 나는 카푸치노를 받아 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차라리 다른 영화나 보러 갈 걸 그랬어.”

 

 

 

 오늘 본 그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너는 휘핑크림을 떠먹으며 푸념한다. 나도 그에 맞춰 주며 대화를 나눈다.

 

 

 

 "딴 거라면 어제 개봉한 그거? 그거 근데 포스터는 좀 그렇던데. 유치하지 않아?”

 

 “누나 뭘 좀 모르네~ 거의 인생 영화거든~ 진짜 재밌을 거야. 다-”

 

 

 

 너는 말을 잠시 멈춘다. 분명 「다음에 같이 보러 가자」 라는 말이었으리라. 하지만 너는 말을 멈추고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나는 카푸치노를 한 모금 마신다. 커피라면 아침에 마셨을 텐데도 어딘가 다른 맛처럼 느껴진다. 정말 신기해.

 

 너는 휘핑크림을 다 먹고 초콜릿을 마시고 있다. 시선은 창 밖에. 어딘가를 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디를 보는 건지, 나도 너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려는데 그러기 전에 네가 먼저 말을 꺼낸다.

 

 

 

 “저기 저 버스 정류장 앞에 있는 사람. 지은 씨 맞지?”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돌리는 것을 멈추고 조심스러운 곁눈질로 창을 바라본다.

 

 긴 웨이브 컬,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그녀. 틀림없는 내 대학 동기 권지은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건지 카페와 가까운 정류장 옆에 서 있다. 머지않아 이쪽을 바라볼 것이다.

 

 

 나는 애써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무시했다. 너는 지은의 쪽을 계속 쳐다보며 인사하지 않아도 되냐고 물었지만 나는 괜찮다고 대답하며 이야기 주제를 돌렸다. 너는 살짝 서운한 표정이었지만 마지못해 나에게 맞춰 주었다.

 

 

 분명히 친구였지만 지금은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따돌림 당하거나 한 것도, 그녀가 싫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우리가 있는 쪽을 응시하는 지은의 시선이 느껴진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원래 그래왔던 것처럼 대화하고 있다. 카페를 둘러보면 잔뜩 있는 평범한 젊은 커플의 모습이다.

 

 

 

 나라는 걸 알더라도 평범하게 데이트 중이구나, 하고 넘어갈 터였다.

 

 

 

 

 

 ....근데 왜, 창문 유리에 비치는 권지은, 너는 그런 표정이야?

 

 

 

 


XXXXX

 

 

 

 

 오랜만에 밖에서 한 데이트는 끝났다. 그녀의 표정을 보자마자 께름칙한 기분이 들며 머리가 계속 아파왔다.

 

 만 하루 동안 시달린 고통에 익숙할 만도 하지만 매번 심해지는 아픔은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너는 나의 표정에 걱정스러워하며 급히 나를 우리 집으로 부축해 왔다. 편하게 쉬라며 소파에 앉혀 주기까지 했다.

 

 

 이제 밖은 완전히 밤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너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진짜 괜찮은데, 나. 그러니까 성현아, 우리 집에서 맥주라도 한 잔 하고 가.”

 

“뭐가 괜찮아.... 진짜... 무리하지 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너도 나와 떨어지고 싶지 않은 건 피차일반인 듯 했다.

 아픈 나 대신 네가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꺼냈고, 싱크대 위 찬장에서 짭짤한 과자를 꺼내 그릇에 부어 접이식 테이블에 놓았다.

 

 너는 러그 위에 앉고 나는 소파에 앉아 물방울이 맺힌 캔을 홀짝홀짝 마셨다. 작은 텔레비전에서는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다. 우리는 가끔 함께 웃기도 하며 함께 있는 보냈다.

 

 

 

 평화로운 밤이었다.

 

 

 순간, 그것을 깬 건 소파 옆에 둔 토트백에서 울리는 핸드폰의 진동 소리였다.

 

 나는 그대로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었다. 지은에게서의 카톡이었다.

 

 내 이름을 부르며 대답을 요구하는 텍스트가 대부분이었다. 지난 십여 분 동안 계속 전화를 한 모양인지, 전화 기록도 여러 번 남아 있었다.

 

 

 솔직히 대꾸하기 싫었지만 시끄럽게 울리는 소리를 막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왜

 

 

 

 

 계속 카톡방을 보고 있었던 건지, 지은은 나에게 금방 대답했다.

 

 

 

 

 진서야 너 저녁에 역 앞 카페에 있었지?

 그거 너 맞지?

 

 

  맞아

 

 

 

 

 그녀의 빠른 추궁에 나는 마지못해 맞다고 대답했다. 무슨 일이지? 내가 무시했다는 걸 알고 절교라도 선언할 셈인가? 그런 거라면 어렵지는 않다.

 

 그런데 그녀의 다음 말이 나를 놀라게 했다.

 

 

 

 

  앞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열심히 말하는 거야?

 

 

 

 

 숨이 막히며 머리가 더욱 아파오기 시작했다. 한 모금 쯤 남은 나의 맥주 캔이 바닥에 나뒹굴며 러그에 작은 자국을 만든다.

 나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계속 카톡을 보내온다.

 

 

 

 

 

  음료도 두 잔 사서 마주 앉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야.

  정말로 반대쪽 자리에다 대고 말하던데. 무슨 일인가 싶었잖아.

 

 

 

 

 나는 깨질 것 같은 머리의 통증을 참고 한 손으로 스마트폰 타자를 두드렸다. 생각 회로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이제 통증은 점점 아래로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럴 리 없잖아.

 

 

 

 

  아니야

  분명히 있었잖아

 

 

 

 

 그녀는 내가 이상해졌다는 듯 반응을 보이며 다시 카톡을 보내 왔다.

 

 

 

 

  앞에는 아무도 없던걸?

  다른 사람들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던데, 몰랐어?

 

 

 

 

 이제 아픔은 팔까지 내려왔다.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타자를-

 

 

 

 

  성현이는?

  성현이가 있었단 말야

 

 

  우리 과 박성현? 너 남친 말하는 거면

 

 

 

 

 

 

 

 

 

   저번 달에 죽었잖아

 

 

 

 

 

 

 

 

 

 그녀가 보내온 카톡을 읽는 순간 부서질 듯한 전율이 온 몸을 뒤덮었다. 온갖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액정으로 떨어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기억난다.

 

 나는 나지막이 터져 나오는 슬픈 신음에 입을 꾹 막았다.

 

 

 

 맞다. 그랬었지. 너는 그랬었지.

 

 

 

 

  아, 그냥 무선 이어폰으로 전화하는 거였을려나?

  그래도 네가 오랜만에 기뻐 보여서 좋았어(웃는 이모티콘)

 

 

 

 

 지은은 계속 카톡을 보내 왔지만 나는 답장을 할 여력도 없었다.

 

 

 언제부터 옆에 있었는지 모를 너는 지은의 카톡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나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꿈결같은 포근함이었다. 분명 진짜의 온기이다.

 

 왜 이게 가짜라고 하는 거야. 왜 다들 보지 못하는 거야. 너의 옷을 꽉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

 

 

 왜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까. 식당 주인 아주머니의 어색한 표정, 표를 두 장 내밀던 나를 바라보던 영화관 점원의 시선. 왜 내가 기억해내지 못했을까. 너는 이미 없다는 걸.

 

내가 울먹이며 중얼거리자 너는 나지막하게 나에게 속삭였다.

 

 

 

“슬픈 건 잊어버려도 좋아. 진서 누나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누나는 뭐든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언제나 어린 소리만 하던 너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찌른다. 너는 울지 않았다. 내가 더 슬퍼하고 있으니까. 그저 깊은 눈을 한 채 나를 안아 주고 있었다.

 

 

 

 왜 금세 나보다 더 어른이 되어 버린 거야. 나는 7월에 멈춰 있는데. 네가 죽은 그 날에 머물러 있는데.

 

 

 

 네가 없는데도 행복을 원하는 내가 싫었다.

 너를 가려 버린 그림자가 원망스러웠다.

 

 

 

 

 왜 나는 꿈조차 마음대로 꿀 수 없는 걸까.

 

 너와 마지막까지 행복하고 싶었는데, 왜 핸드폰을 쥐여 준 거야? 그랬으면 내가 눈치 채지 못하고 꿈을 끝낼 수도 있었을 텐데.

 

 

 

 

 

 텔레비전에서 웃는 사람들에도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그저 너와 떨어지고 싶지 않을 뿐.

 

 

 

 

 

 

 

 

 

 

 수도 없이 눈물지었던 밤하늘이 깊어 간다. 깊은 밤에 초승달은 찾아볼 수 없다.

 

 

 어둠이 깊을수록 나는 달의 밝음을 깨닫는다.

 

 

 

 

 

 

 

 

 

 

 

 

 

 

 

 

 

 

 

 시린 공기가 뺨을 스친다. 감은 눈을 떠 보면 언제든지 그곳이었다.

 

 망령, 범죄자, 살인범이라도 나올 것 같은 유럽의 어두운 밤거리. 실제로 존재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앞 문장에서 서술한 개체들을 제외하면 그곳에는 나뿐이었다.

 미로같이 복잡한 수많은 상가와 집이 있어도 껍데기뿐이었다. 폐가처럼 속은 텅 비어 있었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탈출하려 애를 쓰지만 앞도, 뒤도 어딘지 모르는 어둠이 잠식한 장소에서 여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매번 미지의 존재에 도망치다가, 지쳐 돌바닥 위에 쓰러져 울며 공포의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나를 구해 주는 건 항상 너였다. 부드러운 실루엣과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누나! 내 손을 잡아!”

 

 

 

 

 둘은 손을 잡고 어두운 거리를 달려 나간다.

 

 

 하지만 도달한 거리의 끝에는 네가 없다.

 

 

 내가 등을 보고 달렸던 실루엣은 사라지고, 내 손에 남아 있는 건 덩그러니 남아 있는 너의 손 뿐-

 

 

 

 

 

 

 

 

 

 “헉-!!!”

 

 

 

 항상 이 부분에서 잠이 깼었다. 새벽 4시쯤. 흘린 땀으로 등 뒤가 축축했다.

 

 

 너의 죽음 이후에는 눈을 붙일 때마다 보게 되는 꿈이지만 익숙해지지 못했다. 점점 잠드는 게 두려워졌다.

 

 

 

 

 

 

 

XXXXX

 

 

 

 

 

 

 오늘의 꿈은 첫 번째로 본 예외였다. 그것도 네가 없기 때문이다.

 

 

 

 

 

 

XXXXX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멍 했다.

 

 

 닫힌 창문과 암막 커튼은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게 했다. 어쩌면 하루 넘게 잠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미풍으로 맞춰 놓은 선풍기가 털털털 돌아간다. 접이식 책상 위에는 맥주 캔이며 술병이 한 가득에 작업용 책상 위에는 다 먹은 컵라면이 쌓여 있었다.

 선반 위에 한 뭉치가 놓인 약들도 집 안 풍경과 위화감이 없었다.

 

 

 

오늘 꾼 꿈을 생생히 기억한다. 네가 찾아오는 꿈이었다.

 

 

 

 나는 꿈의 장면을 되뇌어 보려 소파에 잠시 기대어 있었다. 흐릿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흩어져 버릴 장면들이었지만 기억하고 싶었다.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너를.

 

 놀랍게도 더 이상 눈물은 나지 않았다. 하기야 꿈속에서 잔뜩 울었으니까- 라 생각하며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비닐에 포장된 약 1회분을 집어 들고선 싱크대 물을 컵에 받아 약과 함께 삼켰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약을 건너뛰면 머리가 아파진다. 잠든 사이에 약 때를 놓친 것 같았다.

 

 

 

 

 망령인 건지, 백일몽인지 모르겠지만, 네 꿈의 끝은 결코 상쾌하지 않았다. 

 

 

 문득 처음 만났던 순간이 생각난다.

 

 

 

 

 

 

 

XXXXX

 

 

 

 

 

 

 

 

 지난 겨울, 대학교 새내기였던 나는 집을 나왔다. 꽤 스트레스가 되어왔던 부모님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다른 과를 강요했고, 나는 천문학과를 마음먹고 있었다. 그 전까지는 어디로 가든 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1년을 억지로 다녀 보고 깨달았다. 나는 전혀 그곳과 맞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과를 바꾸는 것에 대해 절대 반대의 입장이었고, 나는 내 인생이라며 반박해오던 중 싸움이 난 것이다. 부모님과의 거리는 먼 편은 아니었지만, 이런 쪽으로선 서로 절대 거리를 좁힐 수가 없었다.

 

 

 

 나는 무작정 학교로 향했다.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전과신청을 할 예정으로 캠퍼스로 향했다.

 

 그런데, 길을 잃었다. 구글 지도를 켜고 돌아다녀도 건물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지나가던 남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기... 저, 제가 여기 처음이어서 그런데요, 이 건물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그러면서 나는 들고 있던 핸드폰의 화면을 보여주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남자는 나를 살짝 놀란 듯한 얼굴로 쳐다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따라오라고 말했다.

 

 

 드디어 살았다, 라며 그를 따라 건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같은 장소에 있었다.

 

 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자, 그는 그제서야 멋쩍게 웃으며 자신도 모른다며 고백했다.

 

 

 

 「사실 저 신입생이거든요... 여기는 처음 와 봐요.」

 

 「네? 그럼 왜 알려주신다고....?」

 

 「너무 당황하신 표정이 뭐라도 해 주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서요. 죄송해요, 찾아 주지 못해서... 돌아다니면 어떻게든 발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헤실헤실 웃는 그의 표정이 어딘가 어리숙한 소년 같으면서도 귀여워 보였다. 그대로 우리는 길에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다.

 

 한 살 연하의 그, 내가 꿈꾸던 천문학과인 그와는 그 때의 인연으로 점점 더 친숙해지며 연인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게 바로 너.

 

 

 번호를 교환하고 그를 보낸 후 다시 길에 초라히 서 있는 나를 안내해 그 길로 꿈을 좇게 해 준 건 지은이.

 

 

 

 

 

 

 

 

XXXXX

 

 

 

 

 

 

 

 

 생각해 보니 깊은 인연이다.

 

 

 

 그리고 네가 떠났던 날.

 

 

 

 

 교통사고였다. 신호등이 없는 밤의 횡단보도에서 일어난. 너도, 운전자도 운이 없었을 뿐인 슬픈 사고였다.

 

 

 너의 부고를 듣고 달려간 병원에서는 이미 모든 일이 끝나 있었다. 병원 앞 등나무 벤치에 앉아 울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인, 산등성이에 걸린 초승달빛을 기억한다.

 

 원인이었던 운전자를 자책할 수는 없었다. 완전히 악인이라던가, 그런 사람은 존재하기 어려운 듯했다.

 

 

 

 

 

 그 날 부로 휴학을 했다. 너와 함께한 추억이 가득한 캠퍼스엔 갈 수가 없었다. 핸드폰도 전원을 꺼 두곤 한 번도 켜지 않았다. 초여름을 겨우 벗어난 계절은 멈춰 버렸다.

 

 

 

 그렇게 너의 짧은 삶은 끝났다. 짧은 사랑도 완전함을 잃고 비틀거렸다. 나의 삶도 무너지며 공백을 만들었다.

 

 

 

 

 

 

 

 

 

 

 

 

 

 너는 나에게 무슨 말을 전하고 싶어했던 걸까.

 

 

 

 문득 생각이 들어 책상 옆 서랍에 처박아 두었던 핸드폰을 꺼냈다. 전원을 켰다. 기종과 통신사를 나타내는 화면이 순서대로 지나간다.

 

 문득 꿈에서 본 상황이 생각나 핸드폰을 꽉 움켜쥔다. 이내 켜지는 화면. 한 달이 지났지만 배터리는 변함이 없다. 마치 잠들어 있던 시간이 사라진 것처럼.

 

 

 

 배경 화면에 자리잡은 너와 나의 사진에 애써 눈을 돌리고 메시지 아이콘을 클릭한다.

 

 꿈에서 본 것처럼 안전 안내 문자와 스팸 문자가 주를 이루긴 하지만, 분명히 있다.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 지은이, 과 사람들, 부모님까지. 걱정의 메시지가. 이런저런 위로의 말들, 근황 등, 지은이는 정말 자주 메시지를 남겨 주었다.

 

 

 

 

 

 

 

 

 눈이 뜨이며 손바닥에 가둬놓은 별의 빛이 풀려난다. 초승달은 짙은 밤하늘에는 보이지 않아도, 수없이 많은 별들이 외롭지 않게 해 주는걸.

 

 

 

 

 

 

 

 

 

 

 

 

XXXXX

 

 

 

 

 

 

 

 

 

 

 

 나는 불현 듯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과 문을 열어젖혔다. 어느새 바뀌어버린 듯 한 바람이 방안을 금세 메운다.

 

 보랏빛인 듯 붉은 빛이 도는 석양과 구름 모양이 아름다운 날.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하얀 초승달의 실루엣.

 

 

 

 더 이상 습함은 느껴지지 않는 늦여름 공기.

 

 

 

 

 

 

 

 어렴풋이 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제야 그 말의 진짜 뜻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상현, 만월 어느 때더라도 맨 오른쪽에서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는 초승달.

 

 지는 순간도 그 형태로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초승달.

 

 삭의 하늘에 ‘내일은 분명’ 이라며 품을 수 있는 초승달.

 

 태양 빛이 더 세더라도, 보이지 않더라도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초승달.

 

 

 태양 빛이 있음으로 비로소 한 번 더 밝게 웃을 수 있는 초승달.

 

 

 

 

 

 

 

 

 

 

XXXXX

 

 

 

 

 

 

 

 오늘만큼은 너의 실루엣을 사라지게 하지 않겠어, 하고 다짐했다. 창문은 닫지 않았다.

 

 

 기분 좋은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바람이 뺨을 스쳐 지나가며 머리카락을 살짝 흩날린다.

 

 

 

 

 

 

 나의 시간은 겨우 7월을 벗어났다. 빛은 내가 없어졌다고 생각한 것뿐이었다. 그동안 멈춰 있었다는 게 무색하게도 경쾌하게 똑딱거리고 있다.

 

 

 

 테이블 위 맥주 캔 더미 중 하나가 쓰러지며 러그의 얼룩 위로 굴러 떨어진다. 어딘가 온기가 남아 있는 캔 속에는 무슨 말이 들어 있을까.

 

 

 

 

 

 

 

 

 

 

 

 

 

 

 

 

 

 

 

 

 

 

 

 

 

 

 

 

 

 

 

추재업이라 보신분들 많겟지만 뭐 그래도올림니다. 즐감되셨다면 개추와 댓글 한번씩~~

댓글4

  • 차지원 5레벨 2021-05-30 15:55

    0 0

  • 강설현 7레벨 2021-05-09 10:56

    0 0

    와우 냥냥이 맞춤법 파괴만 하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이런 글도 쓸줄 알았노..

  • 공민서 5레벨 2021-05-08 23:26

    0 0

    우아아아아아... 혹시요... 작가세요???

  • 이은채 6레벨 2021-05-08 23:21

    0 0

    안이 왜 개추만 소리없이 올라가는뎃....? 무서워요 빨리 나오세요...

1
  • 폴리매스 문제는 2019년도 정부의 재원으로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성과물입니다.

  • ☎문의 02-6749-3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