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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샐러드,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

곽시원 기자 5레벨 2019.08.27 10:05

  안녕하세요, 곽시원 기자입니다.

 

이번 기사는 로마의 위대한 장군이자 독재자, 정치가, 장군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한 기사입니다. 영어로는  '시저' 라고도 불리죠., 시저 샐러드(발음이 똑같음), 재왕 절개 수술로(그 수술로 태어남)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실 텐데요, 보통 그를 그냥 카이사르라고 아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 그게 대게 우리가 말하는 카이사르가 맞긴 하지만 가이우스가 개인의 이름, 율리우스는 그의 가문이 가진 씨족명 입니다. 로마의 귀족들은 이렇게 3개의 이름으로 자신의 신분과 정치성을 드러내었습니다. 평민들은 보통 2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죠.  4개의 이름을 가진 귀족들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로마 제국의 17번째 황재, 콤모두스(commodus)처럼 말이죠. 그의 이름은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안토니우스였습니다. (Lucius Aurelius Commodus Antoninus) 카이사르 하면 3두정치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치를 다스리는 우두머리가 셋인 정치 쳬제라고 할 수 있는 것,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그나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그리고 크라수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와  카이사르를 막으려는 귀족들이 손을 쓰기도 전에 그들과 동맹을 맺어 귀족들의 방해 공작을 깨트렸습니다.

폼페이우스(줄여서 폼페이)는 해적을 뿌리뽑는 쟁쟁한 실력자, 크라수스는 엄청난 재산을 가진 부호, 카이사르는 유명한 에스파냐 사령관이었습니다. 

왼쪽부터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입니다.

카이사르는 뛰어난 머리와 작전 능력을 갖고 있었고, 크라수스의 엄청난 재산, 그리고 해적을 뽑는 폼페이의 높은 명성이 합치니 그 세 사람의 연합은 귀족들을 꺾고 세 사람 모두 집정관에 당선되어 로마의 권력을 휘어잡게 되었죠. 게다가 폼페이는 그 이후  카이사르의 딸, 줄리아와 결혼하면서 이들의 간격은 더욱 가까워지고 아무도 맞설 사람이 없었던 셈이죠. 삼두 정치(troica)의 권력이 워낙 막강하여 공화정을 펴는 나라인 로마는 세 명의 왕을 모신 셈이 되어 버린 겁니다.

하지만! 원정을 나갔던 마르크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장군이 장렬히 전사해 버리고 카이사르의 딸이자 폼페이의 아내인 줄리아가 아이를 낳다 죽으니 카이사르와 폼페이를 묶는 끈이 끊어져 버린 셈이었죠. 그리고 비록 장인과 사위 사이 이긴했지만 폼페이는 항상 카이사르를 질투하고 있었죠. 그러던 때 줄리아가 아이를 낳다 죽으니, 로마의 귀족들은 머리가 좋은 카이사르 말고 멍청한 폼페이를 꼬드겼습니다.(그분을 욕하는 건 아님)

   

로마의 귀족들은 독재 정권, 즉 한 사람이  권력을 차지하고 왕을 섬기는 것을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카이사르나 폼페이 둘 중 한 명이 물러나면 결국 독재 정치가 시작되기 때문에 폼페이를 자기 편으로 만들어 공화정을 지키려 합니다. 그 때 카이사르는 갈리아(지금의 프랑스)지방의 사령관으로 로마를 떠나 있었는데 그의 임기가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카이사르는 사령관의 임기를 늘리겠다고 로마에 알리지만, 그가 로마로부터 받은 대답은 사령관도 집정관도 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자기를 몰아내려는 속셈을 알고 기원전 49년 1월 카이사르는 군대를 이끌고 갈리아와 로마의 경계인 루비콘 강의 다다랐습니다. 그 강을 건너면 로마 본토, 하지만! 이 강을  건너서부터는 모든 로마의 장군은 무기를 지녀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것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로마의 대한 충성의 표시였죠. 로마는 카이사르에게  무기를 버리고 홀몸으로 들어오라는 전령을 보내죠. 하지만 무기 없이 로마로 가는 것은 자살이었음으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쿠데타(군대의 힘으로 정부를 뒤집는 것)를 일으키죠.

 

그 유명하고도 유명한 '루비콘강을 건넜다' 와 "주사위는 던져졌다!" 가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드디어 카이사르는 기원전 49년 1월 10일에 군대를 거느리고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물밀듰이 로마로, 로마로 진격하였고 카이사르가 단숨에 로마에 입성하니,이를 막을 수 없었던 폼페이는 허겁지겁 로마에서 도망치고 말죠. 하지만! 폼페이는 에스파냐 사령관이었고 그에게는 10만에 가까운 대군이 있었습니다. 크라수스가 지배했던 동방도 멍청한 폼페이가 덜 위험하다며 (그분 욕 아님) 폼페이 편에 붙죠.

 

더 놀라운 사실은 카이사르가 폼페이가 자기보다 훨씬 많은 군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폼페이와의 전쟁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폼페이는 해적 소탕의 공로자답게 함대를 거느리고 바다는 그의 놀이터였기 때문에 카이사르는 너무 불안해 타이레놀이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드디어! 전쟁은 시작되었고 기적같이 카이사르는 고생 끝에 폼페이의 군대를 무찌르고 군대로 그리스 북쪽 파르살루스에서 맞서게 되었죠. 그 둘의 엔드게임이었습니다. 또 카이사르는 어매이징한 작전과 용병술로 폼페이를 박살내죠. 

 

폼페이는 겨우 목숨을 건져 이집트로 도망을 갔습니다. 당시 이집트는 로마의 동맹국으로 프톨레미 왕과 그의 아내인 여왕이 함께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 여왕은 프톨레미 왕의 누나로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입니다. 그 둘은 당시 권력을 두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한 로마 장군은 카이사르에게 잘 보이려고 그나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장군을 암살합니다. 자신의 후손인 장보고의 탄생을 예언하기도 전에 말이죠. 그와 죽을듯 말듯 싸우던 폼페이우스 장군. 그가 죽으니 카이사르는 당연히 상을 내릴 거라고 믿고 그 로마의 장군은 폼페이를 암살하였습니다. 하지만 

화가 죽을 듯이 난 카이사르는  아부를 하려고 폼페이를 죽이냐며,  그 장군은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폼페이가 죽음 이후,  프톨레미의 힘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카이사르는 이집트 땅을 카이사르대로 손아귀에 넣고 싶었고, 클레오파트라는 클레오파트라대로 자신의 남동생을 권력에서 몰아내고 싶었죠. 그 둘은 뜻이 맞았습니다. 이 때부터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의 연애가 시작됩니다.     

그 이후 그 둘은 아이까지 낳게 되는데, 그는 카이사리온, 즉 카이사르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그 이후 둘은 아예 이집트를 지배하려 하죠. 그러자 옆 나라들이 굉장히 화가 나서 카이사르는 소아시아와 전쟁을 치르게 되고, 또 완승 하였습니다. 

 

원래 로마의 '독재자' 임기 기간은 1년이었는데 카이사르는 그 기간을 '죽을 때까지'로 바꾸었습니다. 할 독재는 다 하면서 왕이 되기는 싫다며 로마는 공화정 나라니 왕이 없어야 한다고... 그는 그 당시 로마의 독재자, 에스파냐 사령관, 갈리야 사령관, 동방 사령관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급기야 카이사르를 로물루스의 후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로물루스는 '건국의 쌍둥이' 중 하나로 전쟁의 신인 마스(아레스)와 레아 실비아(무녀)사이에서 태어나 늑대 젖을 먹고 자란 로마 건국의 쌍둥이라고 전해지죠. 그 뜻은 카이사르는 신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카이사르는 정확한 달력이 없는 것이 찜찜해 이집트의 천문학자들을 불러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 교항 그레고리어스 8세가 조금 손을 봐서 '그레고리안 체력'이라고도 부르죠. 

 

그리고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는 귀족들의 손에 암살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독재 정치를 멈춰야만 했었죠. 그때 카이사르는 자신을 죽이던 귀족 패거리중에 자신의 양아들, '브루투스'를 보고 "브루트스.... 너도냐?" 라고 말한 사건은 아주 유명합니다. 이때부터 브루트스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단 말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샐러드,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그는 양쪽의 얼굴을 가진 사람 같습니다. 

      기사 재미있게 읽으셨길 바라고요, 추천, 댓글 한 번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 곽시원 기자였습니다!!!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19.08.27

로마제국을 정복한 카이사르에 대한 글이네요. 역사적인 지식과 관심이 많은 친구 같아요. 맞나요? 역사적인 에피소드를 아주 자세하게 글로 써 주었어요. 그런데 제목에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샐러드>라는 표현은 아마도 시저 샐러드가 있어서 이렇게 제목을 지은 것 같은데, 좀 무리수이지 않나.. 제목은 좀 더 명쾌하고도 오해가 없도록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카이사르의 어떤 점을 주목해서 표현하고 싶었는지를 좀 더 분명하게 정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어요.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글을 쓰면 자칫 이게 위인전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어떤 사람에 대해 글을 쓰더라도 여러 관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관점을 분명하게 정하는 것이 좋답니다. ^^

[속샘] → [속셈]

댓글3

  • 최우정 3레벨 2019-08-31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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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합니다!

  • 곽제원 1레벨 2019-08-30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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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분야는 아니었지만 재미있어요~!!! 잘 읽었습니다.

  • 김도희 6레벨 2019-08-28 16:29

    0 0

    박수!!! 짝짝짝...!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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